알라딘서재

4u-hot-2327님의 서재
산 자들
4u-hot-2327  2019/07/20 07:19
  • 산 자들
  • 장강명
  • 12,600원 (10%700)
  • 2019-06-21
  • : 4,24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흘 전 즈음, 남편이 좋아하는 빵을 사 두었다. 집 근처에 새로생긴 빵집의 빵인데, 식감이 거칠고 유기농 밀가루와 잡곡을 쓰기에, 이 집의 단골이 되었다. 남편이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두는 건, 꽤 고리타분한 부인일지 모르지만, 난 그 느낌이 좋다. 구시대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빵이야~"


​짜잔~ 하고 빵을 줬다. 그런데 남편의 표정이 영 애매하다. '고맙긴 한데 별로 고맙지 않아' 라는 온 몸으로 뿜어대는 아우라. 그제서야 생각났다.


"맞다! 자기 급식 대신 빵 먹었지!"


3일째 점심으로 빵을 먹던 남편에게, 또 빵을 내민거다. 아무리 빵돌이라도 입이 물렸을거다. 남편은 교사고, 그 즈음 조리조무사분들의 총파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며칠 째 급식 대신 밀가루 조각으로 배를 채우던 즈음이었다.

급식 조리조무사분들은 몇 년 전에도 목소리를 냈다. 파업을 했다. 그 때도 급식 대신 빵을 주거나 수업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불편했고 배고팠다. 조리조무사분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그분들에겐 밥그릇 아닌가. 당시 파업의 결과 조리조무사분들은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이 되었다. 몇 년 마다 한 번 재계약 하는 일자리가 아닌, 무기한 계약직이 된 것이다.


​여론은 준 공무원이나 다름 없는거 아니냐며, 축하하기도 하고, 시샘하기도 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그 분들이 올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낸 것이다. 무기계약직이긴 하지만, 여전히 '계약직'임에는 다름 없었다. 정규직이면 정규직이지, '무기계약'은 또 뭐람. 계약직은 언제나 위태롭다. 


만약 그분들이 정규직이 된다면, 형평성에는 어긋날 것이다. 다른 수 많은 취업준비생들은 뭐가 되는가. 하지만 당장 그 분들의 밥그릇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마음이 간다. 다른 취업준비생들이 직장을 가졌을 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아닐까.



23쪽. "나 이 아이 어떻게 해야 돼?"

"자기가 하기 나름 아닐까"

- <알바생 자르기> 중


​장강명 작가의 신작 연작 소설 <산 자들>은 다수의 사람들의 '밥그릇'이 얼마나 허무하고, 치사하며, 때로는 덤덤하게 빼앗기고 무시당하는지 나온다. 존엄하다는 인간은 없고, 부조리가 가득하다. 


​이 중 <알바생 자르기>에서 계약직(알바생) 혜미는 타인에게 피해 하나 주지 않았지만, 계약직이기에 '이방인'이다. 일 할 능력은 충분했으나, 그녀는 싹싹하지 않은 알바생이었고, 자신의 권리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업무 능력과 무관하게 '자르고', '말고'의 사유가 된다. 그녀의 밥줄은 쉽게 잘릴만한 위태로운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생계. 너무 비참하지 않나. 이 불안을 다수의 시민들이 안고 산다. 심지어 내로라 하는 대기업 사원들도 40대 중후반이 되면 긴장한다고 들었다. 대기업 정규직이란 성 안에서도 마음 놓지 못 하고 위험한 고용 불안은 도처에 널려 있다. 자영업자들도 서늘한 칼날 위를 걷는 삶은 매한가지였다.


118쪽.  "나눠 갖긴 뭘 나눠 가져. 처음부터 확 밟아 줘야 돼."

...

하중동 사거리에서 구수동 사거리까지, 100미터 길이의 거리에서 빵집 세 곳이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 <현수동 빵집 삼국지> 중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하나도 낯설지 않다. 100미터 길이의 거리에서 빵집 세 곳이 벌이는 경쟁은 픽션(fiction)이 아닌 논픽션(non-fiction)이다. 심지어 '빵집'을 '카페'로 바꿔도 되고, '약국'이나 '편의점', 때로는 '치과'와 '소아과'로 바꿀 수도 있다. 한정된 소비자를 두고, 같은 업종의 사람들의 경쟁은 전쟁이었다.


3일째 점심을 빵으로 먹던 남편에게 사다 준 빵도, 우리 동네에 있는 4개의 빵집 중 한 곳의 빵이다. 4개의 빵집은 아파트 중심 200m 정도의 원 안에 모여있다. 프랜차이즈 빵집과 목 좋은 곳의 빵집, 오랜 기간 운영해 빵 굽는 노하우가 상당한 빵집, 그리고 유기농과 천연발효를 앞세운 빵집까지. 각각의 빵집에는 조금씩 손님이 오가지만, 어느 한 곳 붐비지 않는다.


장강명 작가는 계약직, 회사 노조, 부당 해고, 프리랜서 창작가(음악가, 작가), 급식 비리, 열정페이 등 밥그릇에 대한 10개의 짧은 연작 소설들을 그렸다. '썼다'라는 표현보다 '그렸다'가 어울린다. 이 소설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묘사'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작가는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세상에 악인은 없었다. <알바생 자르기>의 혜미를 해고할까 말까 고민하던 은영마저도, 혜미가 안 됐다며 오랜기간 그녀를 보살펴줬던 인물이었다. 작정하고 나쁜 사람이 누군가의 생계를 두고 치사하고 졸렬하게 저울질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섬뜩했다.


자동차 회사 하나가 박살나면서, 해고당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된다. 그런데 '죽은 자들'의 오랜 파업으로 회사는 폭삭 망해버리고 만다. '산 자들'마저도 죽어 버리게 된 것이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부당 해고 당한 죽은 자들의 파업일까? 혹은 그들을 외면하고 묵묵히 생계를 이어가던 산 자들의 태도일까? 죽은 자, 산 자 둘 다 아니라면,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인걸까. 


​83쪽. 만들 수 있는 자동차와 살릴 수 있는 사람들 숫자가 모여서 큰 숫자가 정해지는 게 아니었다. 큰 숫자가 먼저 정해진 뒤 만들어야 하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수가 정해지는 것이 순서였다.

- <공장 밖에서> 중

생각하지 않으며 살면, '평범한 악'을 지나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위해서 '이야기'가 필요하다.


10편의 연작 소설을 읽으면서, 빵집에, 그리고 조리조무사분들이 궁금해졌다. 이야기의 힘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까운 이야기를 들어야 관심을 기울인다. 지구온난화를 잊고 지내다가, 이상기후 때문에 몇 날 며칠 더워서 허덕될 때야 비로소 안 쓰는 방 불을 끄고, 쓰레기를 줄이는 일과 마찬가지다. 노동의 가치와 처우에 대해 아스라히 잊고 있다가, 소설을 읽으니 부당함게 분노한다.


처음,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써도 될까, 망설여졌다. 나는 겪어보지 못 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빵집 사장님들이나 조리조무사분들을 이해한다고 말 해도 되는걸까. 함께 화내도 되는걸까.


378쪽. 너무 어린 새나 늙은 새, 다친 새는 날 수 없다. 많은 새들이 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한정되어 있다. 놓칠 수도 있었던 잠재력을 깨닫고 목적에 맞게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 아닐까?

...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중


<산 자들>의 마지막 연작,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에 실마리가 있었다. 누군가의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그로인해 매일 외줄타기 하듯 힘들게 사는 분들이 있다고 말해야 했다. 서평을 써야, 작지만 옳게 바꿀 수 있는 작은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하늘 나는 새'가 되는 방법이었다. 


​이 작은 서평으로 많은 분들이 장강명 작가의 <산 자들>을 읽도록 설득하는게, 공무원 정규직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디 이 책을 '읽어봄직하다'는 마음이 드셨으면 좋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