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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초롱님의 서재
  •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 이꽃님
  • 11,250원 (10%620)
  • 2023-08-18
  • : 45,566
‘드르륵‘
˝저...... 이꽃님 작가 신작 여름을 한 입 베어물었더니 있나요?˝
˝찾아봅서˝

여행할 때 꼭 향수와 책을 준비하곤 하는데 다녀와서 다시 그 향을 맡거나 표시한 구절을 읽을 때면 여행 날의 기분, 그 곳에서 들려왔던 소음같은 기억의 단편이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이미지가 되어 재생되기 때문이다. 꽤 오래 머물 뜻으로 떠난 휴가지 제주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고는 곧 조그맣지만 알려져있는 지역 서점으로 향했다.
두 번째 찾은 곳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는데 옆구리에 끼고 일정을 소화하며 구매한 날 다 읽어버렸다. 그래서 이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나랑 쇠소깍 나룻배도 보고 돈내코 원앙폭포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줄기의 방울방울도 함께 맞았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지오의 생각과 뜻밖의 사고로 신기한 감각 속에 살아가는 유찬의 생각을 번갈아 들려주는 내용이다.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린다는 자칫 흔할 수 있는 소재로 다소 싱겁게 느껴질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끌고 풀어가냐로 설레게 만드는 작가의 ‘믿고 보는‘ 능력으로 역시 다 읽고 난 후엔 고요했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반짝이며 인다.
엄마와 살며 아빠 없는 일상이 당연한줄로만 알았던 지오는 엄마가 아플 수 있는지도 어느 날 갑자기 시골로 전학을 갈줄도, 그래서 17년만에 처음 보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될 줄도 몰랐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낯선 정주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세상 모두에게서 엄마아빠를 빼앗긴 날, 들리는 소리가 엄마의 마음이었던 걸 깨닫게 되면서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속 마음을 듣는 저주에 갇힌 유찬에게 ‘삐-‘하고 이명이 울리고는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그 고요의 근원이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두고 싶다.

˝... ... 그럼 네가 내 이어폰 해.˝
˝뭔 소리야.˝
˝내일부터 학교 오면 내 옆에 앉아.˝ p. 44

자신의 불행이 다른 사람들의 탓만 같아 분노에 찬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 지오와 유찬을 보며 같이 쓰라렸다. 억울하기만 했을 그 어린 두 인생이지만 지오에게는 새별 선배가 등장하여 새로운 사고의 전환점이 되어 더 열심히 운동하며 엄마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되었다. 그런 새별 형이 유찬에게는 모든 저주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관계성이 어떻게 맺어질지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다.

˝그깟 마음 좀 들린다고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마음? 네가 들린다는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 줄 알아?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하루는 조금 괜찮았다가,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가, 또 하루는 미칠 것처럼 화가 나 죽겠다고.˝ p. 57

이제 예전처럼 상처받고 아파하기만 하는 건 그만둘까 싶다. 미움과 분노는 때때로 찾아들겠지만 거기 매여 있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볼 생각이다. 까짓것, 못 할 것도 없지. p. 165

자꾸 어디있는지 눈으로 쫓고 그 애가 누구랑 있는지 신경쓰게 되는 과정이 그림으로 그려지며, 풋풋한 첫사랑이 귀여워 입꼬리가 올라갔다.

체육 시간이면 짝사랑과 가까이 있고 싶어 주위를 살피고, 청소 시간이면 수돗가에서 쨍한 햇살을 등지고 서로에게 물 장난을 치던 찬란했던 학생 시절이 먼 추억처럼 떠오르는 이 책을 내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아득한 첫사랑을 지나 온 엄마에게도 아찔한 첫사랑을 앓을 아이에게도 뜨거운 여름을 한 입 베어물어 마음을 지켜주는 책이기 때문에.

아직 나의 휴가는 끝나지 않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이 책을 펼치면,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져 번지는 포말을 바라보던 제주도의 시간이 재생될 것이다. 바다의 윤슬처럼 눈부시게 반짝였던 내 여름의 한 장면을 언제고 다시 펼쳐볼 수 있도록 책갈피가 된 셈이다.

여름날, 낯선 여행지에서 길벗한 청귤에이드처럼 상큼쌉싸래한 청춘드라마!
이꽃님 작가의 그간 작품들 중에선 드문 순한맛이 아니었을까
순하고 몸에 좋은 유기농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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