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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lat님의 서재
  •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 11,700원 (10%650)
  • 2010-09-17
  • : 11,353
집사란 직업이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 주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과 모든 골치아픈 일을 은밀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처리하는 능력. 그는 우렁각시이자 슈퍼맨이다.이 소설의 주인공 스티븐슨 역시 그런 집사이며 그 사실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그는 훌룡한 집사로 평가받는 덕목을 "품위"라고 표현하며 품위란 자신의 사적 실존과 공적 실존을 분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엄밀하게 말해 집사라는 전문가의 사적 실존은 없다. 누군가의 집사가 되어 주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순간부터 집사는 주인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주인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오직 주인의 목적 달성에 이바지하는데 자신을 바친다. 사적 실존을 포기했기에 고뇌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니었음을 변명하듯 스티븐슨은 심지어 주인이 행한 결과에 대해 함께 책임지지도 않는다. 이는 상사의 부당한 지시는 거부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규범에도 어긋난다. 영혼없는 충성을 품위라고 보는 견해가 영국적인 것인지 일본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대착오적인 의식임은 확실해 보인다.
낡은 과거의 미덕에 집착하는 스티븐슨의 반대편에 케턴양이 있다.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주인의 잘못을 지적할 줄 알고 하지만 현실에 떠밀려 주인의 잘못된 결정에 굴복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그녀는 스티븐슨과 달리 입체적이고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사적 삶에서도 그녀는 섣불리 결혼을 결심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정임을 받아들이고 개선시켜 나간다. 다행히 그녀가 스티븐슨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남아있는 나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가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변화를 위한 첫번째 실천인 농담을 배우겠다는 결심이 그의 새 미국인 주인을 만족시키겠다는 포부로 귀결되는 결말이 실소를 자아내긴 하지만. 주인공의 답답하고 비겁한 언행이 짜증나긴 해도 이 소설이 내가 집사에 대해 갖고 있던 판타지를 어는 정도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은 고마운 일이다. 음 혹시 저자의 의도도 이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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