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bplat님의 서재
  • 오직 두 사람
  • 김영하
  • 11,700원 (10%650)
  • 2017-05-25
  • : 27,206
아무 권위도 없는 개인이 예술작품에 대해 끄적거리는 감상도 결국은 그 작품에 대한 "평가"이다. 한 작품을 분류화하고 등급을 매기는 평가를 내리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가 내게는 동시대 예술이다. 고전은 그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찬사를 보내도 된다는 보증서를 갖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허나 동시대 예술은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 지 애매하고 세간의 평가가 정당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것이 내가 동시대 작가의 소설보다 보증된 고전을 선호하는 비겁한 취향을 갖게 된 이유이다. 그래도 동시대 작가 중에 신뢰가 가는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김영하 작가이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새롭고 도발적이나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점과 전혀 재미있지 않을 것 같은 소재로 재미있는 소설을 쓴다는 점이다. <오직 두 사람>이라는 소설집에 대해 가장 먼저 들은 정보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너무 감상적이거나 무겁지 않을까 하는 편견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나 이 소설집에 그 전에 인상깊게 읽은 <옥수수와 나>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저없이 집어들었다.
작가는 이 책이 상실,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라 하지만 내게는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이야기들로 보인다. 굳이 내 식으로 이 소설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찾는다면 "뜻밖의 상황"에 부딪힌 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뜻밖의 상황은 얼핏 불가항력으로 보이나 그 이면에는 자신이 예견했던, 혹은 은근히 바래왔던 상황도 있다. 어느 쪽이었던 간에 그것이 벌어진 이후의 상황은 개인이 손 쓸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 청천벽력 앞에서 누군가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적응해 가기도 하고 냉소적으로 외면하며 애써 거리를 두려 하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는 '상실'을 잔인한 운명의 장난이며 그 일을 겪은 사람은 좌절하고 슬퍼하기에 위로받아야 한다고 말하기엔 불온하고 의심이 많은 작가이다. 아이를 유괴당한 아버지도 온갖 종류(불륜, 미녀의 유혹, 뮤즈의 강림,마피아의 위협)의 작가의 로망을 실현하게 된 허세쩌는 소설가도 사람들의 이해와 위로를 받기에는 불합리하고 심지어 비도덕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행태가 쓴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묘한 비애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뜻밖의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은 얼마나 비이성적이 되는가. 자신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이 '뜻밖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가. 그 모든 저열하고 비겁한 자기방어를 누가 어디까지 단죄할 수 있는가.
'뜻밖의 상황'에서 이들이 벌이는 행태는 이들이 악자라서가 아니라 약자이기에 일어난다. 이들은 용감하고 정의로운 영웅이기는 커녕 찌질한 옥수수 소시민에 불과하나 옥수수는 심지어 닭에게조차 해를 끼치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왜소한 존재이다. 그나마 이 옥수수들이 희망을 보이는 순간은 누군가와 교감하고 이어질 때이다. 편지를 쓸 누군가가 있을 때, 가출해버린 아들의 손주를 떠맡을 때, 일면식도 없던 아버지의 슈트를 받아올 때 부조리하고 구질구질하며 불행의 연타에 너덜너덜해진 삶도 조금씩 그 구김을 편다.
되풀이하자면 김영하 작가는 불온하고 의심이 많은 작가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이 때로 허무맹랑하고 난잡한 이야기로 치닫다가도 독창적이라고 추앙받다가 그 독창성의 늪에 빠져버린 여타의 작가들과는 달리 곧 그 폭주를 위트있게 비틀어버릴 수 있는 미덕이 거기에서 나온다.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 '뜻밖의 상황' 앞에서도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또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느낀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