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bplat 2018/01/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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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얼음
- 송두율
- 16,200원 (10%↓900)
- 2017-03-27
- : 317
한국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경계의 자유를 얻기 위해 그는 무엇을 버리고 또 얼마나 큰 고독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유신헌법 시절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한국 입국이 금지되었다가 2003년 참여정부 시절 '해외 민주인사 한마당'에 초청되어 고국 땅을 밟았으나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회고록이다. 다행히 9개월의 옥고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으나 몇십년간 귀국하지 못한 채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과 철학연구에 매진하던저명한 교수를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처 넣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송두율 교수의 방문이 거론되던 시점부터 흥미가 생겨 그의 저서 몇 권을 찾아 읽었으나 사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하버마스에게 사사받았다는 그의 철학은 내게 너무 어렵다. 결국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할아버지 시절부터 유랑민처럼 떠도는 운명이 지워진 듯한 그의 삶일 것이다.
송 교수가 정서적으로 호소했다면 이념을 떠나 인간적인 동정심을 사고 한국 사회에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그가 한국에서 그 고초를 겪고도 여전히 학문적 소신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경계인의 삶을 택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여전히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하고 통일을 염원하며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교류하기를 바란다. 이는 평생을 그 목표에 바쳐 이제 포기할 수도 없는 구 운동권 인사의 빛바랜 염원이라기보다는 학문으로 남북을 연구한 학자의 고집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가 다시 한국을 방문한다 해도 이후의 상황은 2003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극우세력과 보수언론은 그를 난도질할 것이고 진보세력은 그를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 남한의 우리는 통일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젊은 세대는 거꾸로 보수화되었다. 통일은 이제 우리의 소원이 아니다. 오히려 분단이 더 자연스러운 지금의 상황에서 남과 북 그 어디도 선택하지 않고 경계선 위에 머무르겠다고 하는 송 교수는 구세대의 유물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남과 북이든 진보와 보수든 남성과 여성이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거나 또는 속하기를 거부하는 경계인은 있을 수 있다. 그 경계인을 얼마나 용인할 수 있는지가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줄 것이다.
희망을 갖되 그 희망이 객관적이고 냉철한 상황판단 위에 놓아야 한다는, 자신은 그것을 불타는 얼음이라 부른다는 송두율 교수가 다시 그토록 그리워했던 제주와 통영을 방문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는 한국 사회가 조금더 자제력을 가지고 그를 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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