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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여기 있나이다 1
- 조너선 사프란 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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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0
- : 183
소설 초반엔 익숙하지 않은 유대교의 율법과 가족문화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이해도가 떨어질까봐 걱정이 됐는데 읽다보니 느낀 건 가족간에 느끼는 갈등과 고통은 어디에나 있다는 거였다. 유대교를 따르는 4대에 걸친 한 집안 이야기를 주축으로 먼 나라의 독자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겠지.
사실 블록 집안을 파국으로 이끄는 요인들은 특별한 것은 없다. 특별한 악인도 없고 아이들이 특별히 빗나가는 것도 아니다. 보통의 가장, 보통의 아내, 보통의 자녀들. 그러나 어느 집이나 그렇듯이 자신의 한도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의 삶의 궤적이 서로에게 의도치 않는 상처를 안기며 대립한다. 또하나 미국계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사실이 갈등의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대교 율법을 어디까지 따를 것인가? 나는 미국인인가 유대인인가? 이스라엘 유대인과 미국의 유대인들은 어디까지 서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 평온할 때는 모른 체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대립할 때는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결정적인 외부요인은 이스라엘을 덮친 국가적 재난과 그에 따른 주변국가들간의 분쟁이다. 1권 후반부에서는 가족의 갈등과 국가의 위기가 겹치면서 파국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2권에서는 이 긴장감이 허무할 정도로 느슨하게 풀려 버린다. 이스라엘로 돌아가려던 아버지 제이콥은 가족 곁에 남고 이스라엘은 어찌어찌 상태를 유지해 나간다. 이또한 우리 삶이 그렇듯 영화같은 파국 대신 삶은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이혼하고 아이들은 독립하고 가족은 사실상 해체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는 무조건전 존재론적 대답처럼 인간은 너덜너덜 상처입은 감정을 지닌 채로 살아간다. 책의 마지막은 늙은 개 아거스를 안락사시키면서 끝난다. 한 국가와 민족을 덮친 재난과, 한 가족의 해체와, 한 개의 죽음 중에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가치있고 고통스럽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양과 질을 따져 피해정도를 계산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소설의 힘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민족의 고통을 내 개를 보내면서 느끼는 고통으로 치환시키면서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는 데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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