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소련이라는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은 공산주의를 이상향으로 생각한 이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나역시 형편없는 지식 수준에서나마 소위 맑시즘을 다룬 책을 읽고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에 대한 호감이 컷기에 소련의 몰락을 공산주의 자체의 실패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즉 나는 레닌이라는 지도자가 이끈 사회주의 혁명과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독재정권을 분리시켰다. 러시아 혁명은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해 주도되었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고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이를 변질시켰던 거라 믿고 싶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러시아 혁명의 시기를 더 폭넓게, 1891년 제정 러시아의 대기근(먹고 사는 문제는 역시 중요하다)을 계기로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분노가 광범위하게 번졌던 시기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를 연속성있는 러시아 혁명 시기로 다루며 이러한 인위적인 분리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탈린과 그가 주도한 독재정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악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혁명 초기부터 그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 과정 내내 맨셰비키와 볼셰비키의 주도권 다툼에서 인민은 소외되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의 협력과 반목 과정에서 알 수 있듯 소련의 권력자들을 움직인 것은 이념과 가치보다는 권력의지였다.
사실 이런 혁명의 씁쓸한 진실은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모든 혁명이 감당하고 극복해야 하는 뒷모습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하고 무능력한 로마노프 왕조를 처단하고 우유부단한 맨셰비키를 몰아냈듯이 러시아 민중들은 때로는 과감하고 위대했다. 그러나 그들으 독재자들의 독주를 막아내지 못했다. 러시아 혁명은 시작부터 인민을 개조 대상으로 보았고 결국은 인간의 자유와 욕망을 철저하게 관리하려 했기에 실패했다. 이들의 유토피아에는 인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민은 국가가 요구한 속박들 받아들였고 지금은 자발적으로 자신들 위에 엄한 아버지같이 군림할 독재자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그들의 이데올로기와는 별개로 나찌와 같은 전체주의로 나아갈 위험성을 늘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를 허상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체제가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노동를 사회의 작동원리 끌어올린 마르크스주의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미 유럽의 많은 나라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시킨 정책을 펴고 있다. 순수한 자본주의, 순수한 사회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도구에 가깝다. 그리고 어떤 이데올로기든 인간을 배제한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왕조를 무너뜨리고 개방과 개혁을 향한 열망으로 소련 체제를 붕괴시켰던 러이사아 과거의 초강대국 시절을 그리워하며 독재자를 지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떤 체제든 진정으로 인민이 주도권을 잡는 세상이 과연 올까? 레닌의 위대한 점은 "그가 맑스주의에 의해 혁명가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맑스주의를 혁명적으로 만든 점" 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