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하나의
직업이기 이전에 일종의 신분이며, 스스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이 신분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 p104 김영하
수상소감
매년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쯤, 서점에 들르면 문학코너에는 눈에 띄는
책들이 있습니다. 각종 문학상 작품집들이 그것인데요. 처음에는 듣기만 해도 아하~ 알만한 문학상 작품집들만 진열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넘어갈수록 어떠한 종류의 문학상들이 있는지 외우는게 힘들 정도로 다양한 수상작품집들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한국소설, 그 중에서도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저같은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현상입니다. 무슨 작품을 읽어야할지 우왕좌왕 할 필요 없이, 그들이 심사숙고 끝에 선정해준
우수하고 재미있는 작품집을 골라잡으면 행복한 독서를 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 단편소설, 그리고 우수한 그것들을 잘 꾸려놓은 문학상 작품집은
굉장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편소설들은 호흡이 길어서 왠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으면 집어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편소설은 작품집 처음부터
읽을 필요 없이,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작가를 선택하거나, 마음에 드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선택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또
한국 단편소설들은 짧은 대신에 그 소설에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굉장히 압축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처음에 한 번 읽고, 한 달 후에
두 번 읽고, 1년 후에 세 번 읽다보면 보이지 않던 메시지들이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매력을 아시는 분들은 매년 문학상 작품집을
구매하고 계시겠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공신력 있고, 유명한 작품상은 '이상문학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 단편집의 거의 최초 베스트셀러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독보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작품상이고, 이상문학상 작품상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 빼어 기대리는 애호독자들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애호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정성스러운 글을
항상 담고 있으니 말이 필요 없죠. 어쨌든 올해의 이상문학상 작품집도 이런 저의 기대에 부응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실려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은 김숨의 <국수>와 하성란의
<오후, 가로지르다>였습니다.
김숨의 <국수>는 일상 속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행하던
국수를 만드는 행위를 소설로 표현한 점이 색다르더라구요. 밀가루를 반죽하고, 맛깔나는 칼국수를 완성하는 과정 속에서 서럽게 살아온 계모를 위한
의붓딸의 이야기가 겹치는데, 레시피도 아닌 것이 완벽한 소설도 아닌 것이 어느새 칼국수도 완성되어 있고, 주인공의 이야기도 머리 속에 쏙
들어오는 신기한 이야기였습니다. 뒤에 심사평을 읽어보니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와 끝까지 대상후보였다고 하네요. 수상작 선정의 기준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독자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고 들어가는 마력을 지닌 점을 보았을 때에는 최고라고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성란의 <오후, 가로지르다>는 저의 삶과 많이
겹치더라구요. 사무실에서 겹겹히 세워져 있는 큐비클 속에 우리. 타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고, 그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우리의 삶을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조금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어내지 못한 듯 하지만(다시 읽어보면 찾을 수 있겠죠) 큐비클 속
샐러리맨들이라는 소재 자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밖에 흥미로운 소재로 쓰여진 <스프레이> <그
순간 너와 나는> <미루의 초상화>도 재미있게 읽었고, 대상작인 <옥수수와 나>도 한숨에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지난 해까지는 시인 이상의 큼지막한 얼굴이 표지에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약간 상큼하고 가벼운 표지로 변신한 이상문학상 작품집. 하지만 그 안에 실린 작품들은 변함없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들이었습니다.
가끔 머리가 복잡하다거나, 아주 짧은 여유가 주어졌을 때 이 책을 다시 꺼내어보면서 제가 놓치고 지나간 메시지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12-5> 2012 제 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작 김영하 옥수수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