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alacksil 2010/08/18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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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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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 - 2010-05-17
: 17,528
지난 일주일간, 항상 내 곁을 지키던 책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읽고, 공부를 하다가도 지루하면 펼쳐보고, 일을 하는 틈틈이 읽어 내려갔다. 첫 번째 읽었던 [어.나.벨]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애틋한 청춘의 이야기, 두 번째 읽었던 [어.나.벨]은 아프지만 아련한 성장의 이야기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춘들은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 지금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뚜렷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나의 모습과 겹쳐져서 그 어느 때보다 책 속에 빠져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아픔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깊고 차분한 글 속에서 그들의 아픔이 오싹할 정도로 와 닿았다. 그래서 읽고, 또 읽었다. 방금 읽어 내려간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진지해지고, 무거워지는, 하지만 그 느낌이 나를 성장시켜가고 있는 것 같은 중독적인 이야기 속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전화벨이 울리는데서 시작한다. 8년간 잊고 있었던 명서의 전화를 받고 윤 교수를 떠올리고, 단이를 떠올리고, 미루를 떠올린다. 어두웠던 시대 상황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던 네 청춘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 있는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아파하며 성장한다. 유난히 만남과 헤어짐이 잦았던 소설이었다. 미루의 노트, 서로의 방에 있는 전화기, 귀가 들리지 않는 에밀리. 그들이 엮여있는 수많은 연결고리들은 만남과 헤어짐 속의 평범한 일상에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나올 때면 그 어떤 부분보다 집중하게 되었다. 상대방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연결고리들에서 그들의 사랑, 우정, 삶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 것은 크리스토프 이야기였다. 윤 교수는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 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중이라며.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처음에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참 개인주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 초반에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찌보면 자신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이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명서가 윤에게 준 갈색노트를 읽을 수 있게 됨으로서 그들은 서로를 업어준 동시에 업혀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사실 전작주의 독서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읽다보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해당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읽게 되는 경우는 있다. 그 작가 중 한 명이 신경숙 작가님이다. ‘신 작가님의 책은 꼭 읽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지난 작품들 리스트를 봤더니 거의 대부분의 것을 읽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익숙하면서도 감성적인 자극이 되는 내용, 그리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생각할수록 깊은 맛이 느껴지는 문장은 고민 없이 그녀의 책에 손을 뻗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한다.
다른 작품들과 이번 작품의 차이점이 있다면 다 읽고 난 후에 남는 잔상이 아닐까 싶다. 미루의 화상 입은 손과 플레어 치마, 눈앞에 그려지는 윤 교수의 연구실, 거미를 무서워하는 단이와 외할머니 집에서 홀로 편지를 써가며 죽어가던 미루와 그 옆에서 벽을 긁고 있던 에밀리. 그리고 내.가.그.곳.으.로.갈.께.처럼 온점으로 표현되어 있는 문장들은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가슴 한 켠에 꽤나 깊은 인상들을 남겨주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소설 속 요소들의 의미들을 작가님은 어떤 의도로 삽입하신 것일까. 그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책을 펼쳐봐야 할 것 같다. 작가는 새벽이라는 시간을 통해 이 글을 써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더 감상적이고 먹먹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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