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피웠다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을 때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몸을 더 움직이고 혹사시키면서 그동안의 나태함을 용서받으려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자기 위안. 그래서 한동안 동네 뒷산에 올라 줄넘기도 뛰고, 뜀박질도 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집으로 들어왔더니 엄마는 ‘그래. 네가 결심을 제대로 했구나’라고 말하셨다. 그냥, 내가 찔리고 마음이 불편해서 운동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 오해는 불편한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이왕 시작한 운동이라면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내가 가는 도서관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신간, 인기작, 유명 작가의 책들이 거의 대부분 새 책으로 구비가 되어있다. ‘달리기’라는 검색어로 보유중인 책들을 찾아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단 한권이 검색되었다. 하루키의 책은 기껏해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상실의 시대’ 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IQ84’를 그렇게 찬양하고 다녀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찾고 있던 ‘어떻게 달려야 살이 더 많이 빠지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작가가 달리기를 하면서 하게 된 생각들과 자신의 성찰이 담겨 있는 책을 고민 없이 빌려왔다. 달리기를 통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야기꾼, 하루키의 잡설이 궁금해졌다.
며칠 전 신문 책 코너에서 하루키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를 통해 작가가 달리기 매니아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꽤나 유명한 사람인데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것은 약간 놀라웠다. 나름 이것저것 잡스러운 정보들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당시의 놀라움이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든 끌림의 한 가지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작가는 글을 쓰게 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래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달린 것도 이유였지만, 놀랍게도 내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비슷한 것도 있었다. 다른 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 퇴근하고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한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편하게 앉아 글을 쓰고(글을 쓴다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다른 사람들처럼 힘들게 지내지 않아도 되는 작가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몸을 혹사시키고 규칙적으로 임하는 일을 찾고자 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운동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으로 적당한 것을 찾다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이끌어가는 큰 줄기는 ‘달리기’였지만 이를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반성, 성찰,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었다. 단순한 뜀박질 속에 깨알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세심함이 인상 깊었고, 나는 운동을 하면서 어떤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하루키의 매력을 왜 몰랐는지 의아해졌다. 분명 상실의 시대는 몇날 며칠을 붙잡고 읽고 또 읽었었는데, 그럼에도 하루키에 대한 매력이 높아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 에세이집을 읽고 나니 그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달리기를 말할 때...’를 한 번만 더 읽어보고 다른 책을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