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댄 브라운은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학, 예술, 문학, 유전학, 정보기관, 특히 이탈리아 명소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이 책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지만 소설을 뛰어넘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받는다.
매우 자세한 지역에 대한 묘사와 역사지식을 읽으면서 곳곳에 대한 몰랐던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비너스의 탄생이 귀족(?)의 부부생활을 돕기 위해 그려졌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너무 자세한 역사적 설명이나 지역에 대한 묘사가 있으면 긴장이 늦춰질 법도 한데 소설은 끝날 때까지 궁금증을 더해간다. 아니 책을 덮은 뒤에도 과연 주인공들이 어떤 일을 할 지가 궁금해진다.
몇번은 더 읽어야 작가의 지식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작품들에서 로마, 루브르, 바티칸 등에 대한 설명이 자세했다면 이 책에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나아가 터키의 박물관이나 성당을 세밀하게 그렸다. 비밀통로라든지, 소장 작품들이라든지, 일반인은 알 수 없고 보기도 힘든 부분을 그림처럼 설명한 내용을 따라가는 기쁨이 크다.
이번 소설에서도 주인공으도 등장한 랭던 박사는 어느날 병원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 마자 자신을 돌보던 의사가 킬러의 총에 맞아 숨지고 젊은 천재 여의사 시에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도망한다.
자신의 며칠간의 기억이 상실됐다는 사실에 괴로워할 새도 없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세력에게 쫓기면서 랭던은 세상을 파괴시킬 거대한 음모를 꾸민 천재과학자의 계략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천재과학자 조브리스트는 인류를 멸망에서 구할 길은 현재 지구상의 인구 2/3를 없애는 길 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무서운 바이러스를 모 처에 감춰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랭던과 시에나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서사시 <신곡>의 내용을 토대로 멸망의 바이러스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하나하나씩 풀어간다. 책 제목 인페르노는 <신곡>에 나오는 지하세계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과 문학작품, 과학과 역사가 함께 쏟아져 나온다. 랭던과 시에나는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바이러스의 위치를 알아낸다. 그러나 이미 바이러스는 유출되었고 더구나 그 정체는 병원균이 아니라 유전자 변헝을 통해 지구상 1/3의 인구가 불임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믿고 의지했던 시에나가 의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시에나만이 불임의 바이러스를 대항할 방법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제 인류의 운명은 젊은 여인에게 맡겨진다. 이후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지고 소설은 끝이 난다.
불임 바이러스라니 황당하게 들릴 지 모르나 소설에 빠져들다보면 매우 그럴듯하다.
결국 이 세상을 구원할 자는 여인이라는 주장일까?
시에나라는 젊은 여자와 소설의 또 한 축을 이루는 세계보건기구의 책임자인 중년의 여성은 사태를 돌이키기 위해 막판에 손을 잡는다. 세상에 불임을 퍼뜨린 사람이 남성이라면 탄생의 희망을 되살릴 사람은 여성인 것이다.
저자가 이런 의도를 샘칵했다면 동감이다. 아니 단순히 인간 여성일 뿐 아니라 여성성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보너스!
말미에 적은 작가의 말 중 한 부분이 무겁게 다가온다.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랭던에게 이 말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일찌기 한 번도 없었다. '위기의 시대에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
랭던은 자신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죄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부인'은 온 세상을 휩쓴 거대한 전염병이 되어버렸다. 랭던은 절대 이것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