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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 낭송 한비자
  • 고미숙 기획
  • 8,910원 (10%↓490)
  • 2015-02-04
  • : 231

우리는 누군가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역린을 건드렸다.”

대개 '역린' 이란 괜히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의 약점이나 자존심, 혹은 분노를 폭발시키는 지점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의 출전이 2천 년도 더 된 <한비자> 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비자> 〈세난(說難)〉에는 용의 비유로 역린에 대해 설명한다. 

용은 온순할 때 가까이할 수도 있지만 목 아래에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逆은 거스를 역, 鱗은 비늘 린.

역린은 문자 그대로 ‘거꾸로 난 비늘’이다.

人主亦有逆鱗

군주에게도 역시 역린이 있다.


한비가 글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용이 아니다. 바로 권력이다.

군주에게는 남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

군주에게 역린은 자신의 권위, 약점, 욕망, 두려움 혹은 상처일 수도 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 지점을 모르고 건드리면 설득은 실패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실린 편의 제목도 〈세난〉, 곧 ‘설득의 어려움’이다.

논리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해도 실제 권력 속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보고라도 누구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런 상황은 현대 사회의 정치든 혹은 회사든 어떠한 조직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역린에 대해 처세술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한비자의 역린 이야기는 단순한 처세술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더 깊은 것을 보았고 그걸 말하고자 했다.


높은 산 위의 나무는 그 자체가 특별히 크지 않아도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이유는 낮은 골짜기의 큰 나무보다 산의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그렇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자신의 능력보다 앞선 힘을 만들어 낸다. 

한비자는 그러한 위치로 인해 얻어진 힘을 ‘세(勢)’라고 보았다.

즉 군주가 반드시 모든 신하보다 지혜롭거나 유능해서 신하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군주라도 군주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남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 힘은 개인의 덕이나 재능보다 자리와 위세에서 나온다.

이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위치가 힘을 만든 것이다.


그의 이 통찰은 당시로서는 무척 급진적이다. 이것은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이 통찰은 유능한 사람은 당연히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도덕적 기대를 거꾸로 뒤집는다.

현실의 권력은 반드시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권력은 그 자리가 가진 명령권, 인사권, 정보 접근권, 상벌권을 통해 작동한다.

실제로 오늘날의 현대 조직으로 옮기면 더 쉽게 보인다.

실력이 뛰어난 과장보다 인사권을 가진 임원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엔지니어보다 예산을 배분하는 부서가 프로젝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

한비는 이미 전국시대에 이것을 보고 있었다.

그가 깊이 지켜본 권력은 사람의 품성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위치에 붙어 있었다.


<한비자> 에서는 이에 대해 더 깊게 들여다 보았다.

한비는 권력의 중추를 이미 장악한 대신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군주를 위해 자신보다 더 뛰어난 법술가를 추천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둘이 함께 존립하기 어려운 경쟁관계라면, 세력이 없는 유능한 사람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

기존의 실권자는 왜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겠는가.

이것은 단순히 ‘사람은 질투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비는 이해관계와 구조를 통해 권력을 보았다.


만일 이미 군주의 신임, 인사, 정보, 보고체계를 장악한 중신 앞에 외부의 뛰어난 인재가 등장한다고 치자.

그 인재가 군주에게 가까워질수록 기존 실권자의 권한은 줄어들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 실권자가 경쟁자를 막으려는 것은 개인적 악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자리가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한비는 바로 그 구조를 통찰했다. 

실제로 한비 자신이 바로 그 법술지사였다


한비는 본래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왕실 출신이었다.

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며 여러 차례 개혁을 주장했으나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말더듬이 때문에 말로 설득하는 데 능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쓴 글은 탁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글을 알아본 사람은 자신의 나라 왕이 아니라 이웃의 강력한 진나라의 왕, 영정이었다. 

바로 훗날의 진시황이었다. 


사마천 <사기>에 의하면 진왕은 한비의 글을 읽고 크게 감탄했다. 한비라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한나라 왕을 압박하여 한비를 사신으로 오게끔 요청했다. 이에 한비는 진왕을 만나러 진나라에 들어갔다.

하지만 진나라에는 이미 이사(李斯)가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한비와 이사는 모두 순자의 문하에서 공부한 인물이었다.

이사는 한비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동시에 한비가 진왕의 신임을 얻으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결국 한비는 진에 들어온 뒤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그는 이사에 의해 독약을 받고 죽게 된다.

진왕이 뒤늦게 마음을 바꾸어 풀어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이 비극적 운명은 자신이 이미 쓴 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마치 예언 하듯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권력의 구조를 이미 알고 있었다. 


기존 실권자는 경쟁자를 경계한다.

군주는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신하를 불편해한다.

세력 없는 유능한 법술가는 양쪽 모두에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

한비는 이 구조를 너무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비의 죽음은 단순한 불운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권력자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신하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리와 위세가 인간의 능력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군주의 정보와 판단이 측근에게 장악되는 위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벗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이 그를 구해주지는 못했다. 

자신도 그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비가 가진 것은 통찰이지 권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조를 이해하는 것과 구조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높은 산의 작은 나무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았지만, 정작 한비 자신은 높은 산 위에 있지 않았다.

진왕에게 인정받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아직 권세가 없었고, 이사는 이미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법가가 냉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을 정확히 본다고 해서 현실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비를 제거한 이사는 승리했을까.

역사적으로 이사는 진시황의 통일 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고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자 궁정의 권력구조가 흔들렸다.

환관 조고는 어린 황제 호해 곁에서 정보와 접근권, 명령체계를 장악해 갔다.

결국 이사는 조고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하고 처형된다.

한비를 막았던 사람이 결국 자신보다 더 강하게 군주의 귀와 눈을 장악한 사람에게 제거된 것이다.

한비를 죽인 구조가 이사에게도 돌아온 것이다.

이처럼 한비는 권력의 작동방식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았고, 그 구조는 실제로 반복되었다.


냉혹한 권력의 구조를 직시한 법가는 유교와 완전히 상반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교를 대표하는 <논어> 나 <맹자>, <중용> 같은 책을 보면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배울 수 있고, 수양할 수 있고, 부끄러움을 알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법가는 그러한 기대와는 다르다.

사람은 이해관계에 흔들리며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권한을 지키려고 한다.

군주의 눈과 귀는 왜곡될 수 있다.

능력 없는 사람도 위치가 높고 위세가 있으면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

즉 법가는 이상적인 희망을 품기보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다.

유교가 인간이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면, 법가는 인간이 쉽게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았다.

그래서 <한비자> 는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현실을 정확하게 보게 한다.

한비의 삶은 그 사상의 가장 냉혹한 주석인 셈이다.

그는 현실을 누구보다 똑바로 보았지만, 그 현실이 결국 자신을 삼켰다.


결국 춘추전국의 오랜 분열을 끝내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한 진의 국가 운영에는 상앙이래의 강력한 법가적 제도와 통치 방식이 통한 것이다.

하지만 그 강력한 진은 너무나 빨리 무너지고야 말았다.

불과 15년 만에 무너진 것이다.

그렇다면 법가는 천하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왜 천하를 지키는 데는 실패한 사상이었을까? 

아니면 한비가 추구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2천년 이나 지난 지금 나는 왜 다시 <한비자>를 읽어야 할까?

내일은 이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하겠다.

1일차 마침.







총애받는 신하들이 지나치게 가까우면 반드시 그 군주가 위태로워집니다.- P24
군주가 정해진 법률을 버리고 사사로운 의견을 따르면 신하는 지혜와 능력을 꾸밉니다. 신하가 지혜와 능력을 꾸미게 되면 법률과 금령은 바로 서지 못합니다.- P49
무릇 용이란 짐승은 유순하여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런데 그 턱밑에 직경이 한 자 되는 거꾸로 박힌 비늘, 역린이란 것이 있다. 만약 용을 탄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그를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유세가가 그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군주를 설득하여 움직일 수 있다.-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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