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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 오십에 읽는 주역
  • 강기진
  • 15,300원 (10%850)
  • 2023-10-31
  • : 26,480

IMF 시절,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은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과도 같았다.

환율은 급속도로 오르고 회사는 줄줄이 문을 닫거나, 직원들은 해고가 되었다.

그때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가 있다.


<오락실>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장난이 아닌 걸 또 최고 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단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시험을 망친 딸아이가 오락실에 갔는데 아빠를 본 것이다.

처음에 아이는 아빠가 회사에 가기 싫어서 하루 일탈 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뉴스에 IMF시대에 실직한 아빠들이 갈 데가 없어 오락실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아빠는 아이 눈치만 보는 가사 속에서 당시의 힘겨워 했던 아빠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당시 난 대학생이었고 그런 시대상보다 노래 가사 중의 코믹한 부분.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가 재미있어, 항상 누군가를 보면서 놀릴 때 부르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 오십이 넘어 ‘그 대머리 아저씨’ 처지가 바로 내가 될 줄 어찌 알았으랴.


<돌아보면 이 십대는 미숙했고 삼사십 대의 삶은 너무 치열했다. ..중략..

그렇게 젊은 날의 열병이 여러 겹의 나이테를 남기고 지나갔을 떼 비로소 오십이라는 원숙기에 이른다..중략..

그런데 정작 황금기에 이른 오십 대가 잘못된 관점 때문에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략...

그 이유는 나이 오십에 이르면 더 이상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글머리에 중에서.


그렇다.  20대의 나는 철이 없었다. 곧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중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단 한번의 업무 경력 단절도 없이 26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일했다. 그 과정 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며 나름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심을 가졌었다.

실력인지 운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해야 할 것과 이루어야 할 것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점차 세월이 갈 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난관에 부딪힌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점점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50을 겨우 넘겼는데, 지금껏 살아왔던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 나는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때마침 펼쳐든 책 <오십에 읽는 주역>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침서로 읽혀졌다.

이 순간, 바로 역경 속에 담긴 지혜를 한번 살펴 봐야할 시기인 것이다.

주역(周易)은 원래 점술을 치고 운명을 예측하는 책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주역은 사주팔자,토정비결이나 점성술, 타로 카드처럼 우리의 운명을 점치는 미신 행위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주역은 단순히 운명을 점치는 행위를 넘어선 인생에 대한 처세와 통찰이 담겨 있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경(易經)이란 뜻으로 원래 주나라 이전 은나라 (기원전 1600년~ 기원전 1046년 경) 의 점인들이 정립한 점술 책이다.

은나라 사람들은 갑골문을 통해 하늘의 뜻을 계시라 여기고 그것이 맞는지를 확인하며 자료를 쌓아갔다.

그 자료는 1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를 이어가며 쌓였고 그것을 주나라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주역이라 불렀다고 한다. 결국 주역 즉 <<역경>>은 유교의 삼경 이라 불리는 <<시경>>, <<서경>>, <<역경>>의 하나가 될 만큼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과거 고대인들이 천년이 넘는 경험치를 축적한 막대한 데이터베이스 창고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저자 강기진님은 주역을 두고 사람이 쓴 책이 아닌 하늘이 내린 계시라고 보았다.

주역에서 뜻하는 내용은 인간의 삶은 하늘이 내린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 설파한다.

이 책의 특징을 꼽자면 저자는 책을 통해 주역의 64괘를 모두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역경의 핵심인 괘에 대한 설명과 오십대에 이른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괘를 선택해 설명한다.

저자는 그러한 의미에서 오십에 이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시기이며, 이때에 역경의 지혜를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

이십 대에서 부터 사십 대까지 쌓아온 인생의 축적을 오십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관망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라 보았다.

이십 대가 배우는 시기라면, 삼사십 대는 고군분투하며 자기 인생의 항로를 개척하는 시기다.

저자는 이 시기를 용이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삶에 비유했다.

오십 대에 이르러서야 용이 드디어 땅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여 날아다니는 시기로 보았다.

그래서 오십은 자신의 과거를 바로 세우고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인생의 황금 시기의 시작으로 여겼다.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뉜다.

제 1장은 천명(天命)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결국 이루고야 마는 힘이 바로 운(運)이라고 한다.

그러한 운은 사실 내가 가진 천명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바로 천명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죽을 때까지 탐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주역의 64괘에 담겨 있으며, 역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공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주역의 64괘란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경험하는 64가지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라 조언한다.


제 2장은 불변은 만변에 응한다는 의미를 다룬다.(不變應萬變불변응만변)

역경의 역(易)이란 글자의 원형적 의미는 ‘달빛의 비춤’ 이라고 하는데 달빛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것 처럼 역은 비춰지고 바꿔지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불변 즉 변하지 않는 가치는 만변 즉 변하는 가치를 조화롭게 응할 수 있음을 뜻한다.


제 3장은 처신을 다루는데 여기서 비인(匪人)이란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수양에 따라 성인, 군자, 대인, 소인으로 나뉘지만 여기에 비인이 하나 추가된다.

비인은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사람이다. 즉, 사람의 모습을 했지만 짐승과도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사람인 것이다.

역경에선 아예 사람 아닌 사람과는 말 자체를 섞지 말라고 한다. 비인에게는 말을 섞어 봐야 오히려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 더불어 말을 나눌 사람인데 더불어 말을 나누지 않으면 사람을 잃게 되고, 더불어 말을 나눌 만하지 않은 사람인데 더불어 말을 섞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可与言而不与之言 失人 不可与言而与之言 失言>  논어 위공령 7장 1절


제 4장은 믿음에 대한 글이다. 오십에 이르러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그 믿음의 근원을 파헤친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이성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을 발전 시켜온 원동력은 이성이 아닌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지상정임을 밝힌다.

즉 정(情)이야 말로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지닌 천명이라는 것이다.

정은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은 정이 살아 있어야 정겨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가장 공감이 갔던 장은 3장의 비인에 대한 개념이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회사와의 분쟁 때문일 수도 있는데 회사의 책임자가 져야 할 의무는 무시하고 인간 본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언행을 겪으며 확실히 비인은 존재함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64라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가 흥미로웠다.

주역의 64괘를 이루는 단위를 효라 부르는데 그것은 음과 양이다.

이는 0과 1로 대치가 되는 디지털 시대의 6비트 2진수,  DNA를 이루는 유전자 정보 구조인 코돈 64와 어떤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

주역이 의미를 상징한다면, 디지털은 계산을, 유전자는 생명을 상징한다.

어쩌면 64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우주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오십은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여 천명을 아는 시기라고 했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임은 아닐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이제서야 알 시기가 된 것이다.

나를 안다는 것과 하늘이 내린 명을 안다는 것은 둘이 아니다. 서로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동안 겪어왔던 모든 경험들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게 될 시기가 온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나도 조금 더 견디고 힘을 내보자.

과거에서 내게 보내는 메세지인 오락실의 마지막 가사처럼.


“승부의 세계는 오~ 너무너무 냉정해

부녀간도 소용없는 오락 한판

아빠 힘내요 난 아빠를 믿어요

아빠 곁엔 제가 있어요

아빨 이해할 수 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By Dharma & Maheal



이처럼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운이 좋다, 나쁘다‘ 보다는 ‘운이 강하다, 약하다‘는 표현이 보다 부합한다.- P21
운명의 작용에는 오만한 자의 무릎을 꺾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세상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이지 ‘좋지 않은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신비를 마주했을 때라야 오만해지기 쉬운 인간의 마음이 하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P43
팔자가 꼬이는 것은 스스로 팔자로부터 도망치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P68
내가 맺은 연들은 각기 하늘의 대리자이므로 내 뜻대로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낙천해야 하고, 또 낙천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무언가 나의 이해를 넘어선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다.- P96
결국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오늘은 물론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꾼다.- P155
변화는 필요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한 것이다.- P171
결국 어떤 일을 잘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자기가 속할 공동체를 잘 선택하는 일이 먼저임을 명심해야 한다.- P189
비인이 섞여 있는 상경의 세계에서도 의리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큰 상처를 입는 것이다. ... 중략..
결국 진실된 마음은 그리 쉽게 쏟는 것이 아니며, 의리 역시 그리 쉽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오십이 놓인 세계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하경의 세계여야 한다. 그래야 나잇값을 하는 것이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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