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보이차 한잔

- 다시, 100일 정진 100일차 

 

폐하.

신 진평(陳平)은 이제 더 오래 이 말을 붙들고 있을 수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폐하께, 신이 살아왔던 지난 초한전쟁부터 삼십년 간을 마지막으로 아뢰고자 합니다.

 

신은 일찍이 항우 진영에 있었사옵니다.

홍문연에서 처음으로 한왕을 뵈었고, 그날 신은 한왕을 통해 천하의 향방이 누구에게로 기울 것이지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이후 신은 항우를 떠나 한왕께 귀의한 것도, 결국 그날의 인연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의 항우는 말도 못할 정도로 강했지만 결국 천하는 한왕의 손에 들어 갔습니다.

고조께서 천하를 얻은 것은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신은 고조께서 한왕 시절, 항우와 싸운 전반 십오 년의 천하쟁패와 고조께서 돌아가시고 궁중에서 이어진 후반 십오 년의 피바람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신의 하는 말은 한낱 늙은 신하의 넋두리가 아니라, 초한지 삼십 년을 끝까지 건너온 한 사람의 진술이라 여겨 주십시오.

 

여태후께서 돌아가실 때 신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진시황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때의 진나라는 외부의 적에게 먼저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황제의 빈자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내부에서부터 무너졌습니다.

환관 조고는 욕심으로 그 자리를 더럽혔고, 명재상 이사는 제국의 무게를 알면서도 끝내 그 무게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태후가 죽은 뒤, 신은 두려웠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무척 겁이 났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나라 마저 진나라의 뒤를 따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우리에게 수습해야 할 문제는 진시황 사후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여산을 비롯한 여씨 일문은 이미 왕과 요직의 자리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병권 또한 그들 손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한 그 어떠한 것도 수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정국을 안정 시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권력 집단을 벗겨내고도, 나라가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은 유방 황제가 저희에게 남겨 준 유훈에 따라 다시 조정을 개혁해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핏줄보다 병권을 먼저 확보해야 했고, 명분보다 순서를 먼저 정해야 했습니다.

주발(周勃)은 칼을 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은 그 칼을 언제, 누구에게 향하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씨를 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 누구를 세우느냐가 더 중요했습니다.

유씨 성을 가진 아무나 앉힌다고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번 피로 얼룩진 궁궐은 이름 하나 바꾼다고 곧장 맑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황제를 고르는 일은 핏줄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질서의 얼굴을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신은 가장 먼저 폐하를 생각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유방 황제의 8명 황자들중에 *4번째 황자 이셨습니다. 2대 효혜제 (유영)께서 일찍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분의 후손인3대와 4대는 모두 어려서 사직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 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여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하셨으나 가볍지 않았으며, 온화하셨으나 약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세상을 뒤흔들 상은 아니지만, 세상을 안정시킬 만한 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공신들은 움직였습니다.

여씨 일족을 제거하고, 병권을 거두고, 여씨의 천하를 다시 유씨의 이름 아래로 돌려놓았습니다.

이 한 걸음은 단순한 정변이 아닙니다.

진시황 사후 무너졌던 제국의 빈자리를, 이번에는 다시 무너지지 않게 초석을 닦는 일이었습니다.

 

천하쟁패의 십오 년은 유방 황제와 항우가 천하의 주인을 다투 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후반 십오 년, 유방 황제가 죽은 뒤 혈통과 후계와 외척이 칼이 되어 벌어진 또 하나의 초한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되기까지 도합 삼십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고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나서 다시 나라의 기틀을 잡는 마지막 수가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심으로 비로소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천하쟁패의 끝은 유방 황제께서 천하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여태후가 권력을 쥔 것으로도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자리를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처리하는가, 바로 그것이 진정한 천하쟁패의 마지막이라고 신은 여겼습니다.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신 순간에서야 신은 비로소 알았습니다.

유방 황제는 밖에서 나라를 세우셨고, 여태후는 안에서 그 나라를 피로 붙드셨습니다.

폐하의 즉위는 그분들이 흘리신 피 위에서 처음으로 제국이 안정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신 겁니다.

이제야 비로소 천하는 안정되었고 한은 오래 이어질 제국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신, 진평은 장량 같은 깊은 계책을 쉽게 내놓지 못합니다.

또한 소하처럼 조정의 실무도 능숙하게 처리도 못 합니다.

신은 늘 한 걸음 물러서 있었고, 숨을 죽여야 할 때 숨을 죽이며 버티기만 잘 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신을 두고 그저 살아남은 사람이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신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았기에 마지막 판을 볼 수 있었고, 끝내 마지막 질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폐하.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가 영웅이든, 황제이든, 반역자이든 죽음과 함께 그의 소리도 닫힙니다.

그래서 역사란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진술만 남게 됩니다.

항우는 전설이 되었고, 유방 황제는 나라를 남겼으며, 여태후는 피를 남겼습니다.

신, 진평은 그 남겨진 것들 위에서 마지막 질서를 골랐습니다.

 

이제 신이 바라는 것은 둘 뿐입니다.

폐하께서 성군이 되시어 이 한나라를 오래 이끌어 가시는 것과 폐하께서 어서 빨리 태자를 책봉하는 것이옵입니다.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나라의 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은 진의 몰락을 보았고, 또 한의 피바람도 보았습니다.

부디 이제부터 폐하의 한나라는 다시는 그런 주인이 없는 재앙을 겪지 않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신이 떠나게 되면 신의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 주십시오.

신이 끝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이 나라가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삼십 년간 불었던 피바람을 지나 겨우 봉합된 이 나라가 기틀을 잡아 부디 오래토록 이어진다면, 신의 삶 또헛되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을 겁입니다.

 

신, 진평은 비록 명재상은 아니었을지라도, 폐하께만은 끝내 좋은 재상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폐하, 신은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부디 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주옵소서.


 By Dharma & Maheal

 

주: *4번째 황자: 유항(劉恆BC 203년 ~ BC 157년) 으로 유방의 8명의 아들 중 나이 순으로 네번째 임.유항의 어머니는 유방에게 그리 사랑받지는 못했으나, 아주 처신을 잘하여 여태후 눈에 띄지 않아 이들 모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음. 훗날 태종 효문황제(太宗 孝文皇帝) 가 됨. 보통 ‘한문제’ 라 부르며 한나라 치세중 가장 성군으로 불리게 됨. 그로인해 그동안의 내외적 혼란을 전부 정리가 되고 이후 한경제, 한무제로 이어지는 한나라 400년 기틀을 만들었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