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82,83일차
아니, 장난 하세요? 도대체 무슨 일을 지금까지 하신 거예요? 이게 뭡니까?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내고야 말았다. 나의 큰 소리에 은행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월요일날 고객님 댁으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매니저 급으로 보이는 급하게 직원이 다가와서 사과를 했다.
아니요. 됐어요. 제가 월요일 오전 9시 까지 다시 올께요. 그때 까지 꼭 만들어 주세요.
으름장.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키가 큰 여성 매니저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 나도 이렇게 까지 고함을 지를지 몰랐다.
4시간 전, 오후 3시 정각, 북경 왕징에 있는 한국계 은행에 들어섰다.
노동국에 내야 할 자료 중에 은행에서 입출금이 된 내역들이 있다.
회사와의 노동관계를 입증하려면 회사가 내 개인 계좌로 보낸 급여및 비용들을 정리해서 발급을 받아야 한다.
이 정도 업무면 은행에서 금방 될 줄 알았다.
번호표 8번, 오전부터 오후까지 나를 포함에 내가 8번째 고객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은행은 한가했다. 창고에 내 신분증을 주고 내가 요청하는 서류에 대해 설명한 후 창구 여직원의 업무를 기다렸다.
직원 말로는 자료가 본점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고, 내가 요청한 자료의 검색 기간이 10년이 넘는 지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미리 내게 양해를 구했다.
好的(하오더), 没问题(메이원티)! 좋아요, 문제 없어요. 라며 기분 좋게 유리 창고 맞은 편의 앳딘 모습의 담당자에게 대답을 건넸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기다림에 무료해서 유튜브도 시청하고, 미리 사온 커피도 마시며 그녀의 업무가 끝나길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에서 뭔가를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쯤 끝날까요?
글쎄요, 우리 쪽 은행에는 고객님 자료가 없어서 고객님이 개설했던 은행에서 자료를 받아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원래 중국의 은행은 계좌를 개설한 지점이 아니면 같은 이름의 은행이라도 업무처리가 상당히 느리다. 20년전 상해에서 만든 은행 통장을 말소를 하려고 하니 북경에선 안되서 상해에 가서 처리했던 이력이 있다.
그만큼 중국의 은행 시스템은 폐쇠적이고 낙후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담당 직원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래서 또 기다렸다. 두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아직도.
세 시간이 지났다.
혹시 은행 퇴근할 시간이 아닌가요?
네, 4시반에 은행업무는 끝났어요. 하지만 고객님 업무로 인해 연장 중입니다.
아이고, 이런 죄송하게도...
그러고 보니 은행 출입구 샷터문은 반쯤 내려가 있는데 은행엔 나 혼자 창구 앞에 앉아 있다.
하지만 10명은 남짓한 은행 직원들 대부분은 서로 이야기를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드디어, 내가 요청했던 서류를 보고 서명을 해달라고 서류를 유리창 아래 구멍으로 건네 준다.
서류를 보는 순간, 이거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아니, 금액중 어느 것이 입금 된 것이고, 어느 것이 출금 된 것인지 표시가 전혀 없는 데요?
그건, 고객님이 직접 계산해 보면 알죠. 최종 금액에 금액이 많으면 들어 온 거고, 적으면 빠진 거죠. 직접 더해보고 빼보세요.
그럼 여지껏 은행에서 만들어 준다는 서류의 의미가 뭐란 말인가?
허탈해진 마음 속에서 울분이 치솟았다.
아니 그래도 한국에서 대표적인 이름을 가진 은행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일을 하지? 담당 직원에게 보다 은행 자체가 문제라 생각되었다.
이러다 아마도 이 은행은 곧 문을 닫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 방문 고객이 총 8명, 내가 마지막 방문 고객인데 4시간에 걸쳐 해준 업무도 제대로 못하는 은행이 앞으로 계속 운영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무리 북경에 한국인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수준으로 까지 떨어졌는지 몰랐다.
한국에서 중국을 악마화하고 후진국이란 관점이 많은데, 요즘 중국의 관공서만해도 서비스 수준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업무 태도와 처리 방식은 깔끔해졌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의 큰 은행은 예전 중국의20년전 수준으로 퇴보해 버린 것이다.
오늘도 진흙탕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내가 지녔던 여유도, 담담함도 이번엔 모두 진흙탕 속에 흠뻑 빠진 셈이다.
내가 지녔다고 착각했던 여유도, 담담함도 사실 조급함의 다른 이름인 것은 아니였을까.
어쩌면 이번 노동쟁의가 아무런 소득 없이 결말을 맞이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여전히 여여함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은행 서류 4시간. 중국 생활 26년이지만 아직도 적응 안된다.
난 아직도 멀었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