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보이차 한잔

날짜:2026년03월17일      (출생18649일 중국생활 9567일)

오늘의정진: 법, 그 기원에 대해서

- 다시, 100일 정진  78, 79일차

 

기원전 2100년, 수메르의 우르남무 법전은  사람 사이의 충돌을 벌금으로 조정했다.  

기원전 1754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징벌을 내렸다.

법을 통해 복수를 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복수가 아니라 복수를 멈추기 위한 기준이 되었다.  

법의 형태는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고대 법이든 현대의 법이든 다르지 않다.

 

법은 처음부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충돌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법이 진실을 찾아 줄 것이라고 믿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의 순진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법은 입증 가능한 것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법은 정의를 완성하지 않는다.  현실의 법은 판단 가능한 기준 안에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법(法)은 물 수 ’水’를 상징하는 삼수변 ‘氵’ 에 갈 거 ‘去’ 가 합쳐진 글자이다.

물이 간다는 것은 흐른다는 뜻이다. 즉 물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른다.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적용되는 기준, 그리고 어긋난 것을 가르고 제거하는 질서를 담았다. 

이때의 법은 순응과 냉정한 기준이 서로 섞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후 도가(道家)의 사유가 더해지면서 인간은 법을 따르는 것보다 흐름에 따르는 삶을 더 높은 경지로 보기 시작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가 말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는 말은 법의 기준을 넘어 존재의 방식으로 확장된 선언이었다.  

불교 또한 이 흐름 위에 놓였다. 

집착을 내려놓고, 인연에 따라 흐르는 삶.  

이 지점에서 동양은 법 위에 도를 얹는다.  

법은 기준으로 남겼지만,  도는 그 기준마저 초월하는 경지로 들어선 것이다.

 

서양의 법 ‘law’ 는 ‘놓여진 것’에서 어원을 찾는다.  

정해지고 고정된 규칙이며 법은 하나의 선(線), 즉 라인(Line)이 되었다.

그 선을 넘으면 처벌되는 경계를 가지게 되었다.  

동양이 기준 위에 ‘흐름’ 을 얹었다면,  서양은 기준 자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동양이든, 서양이든 흐르든, 고정되든 결국 법은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되었다.

특히 권력이 강할 수록 법은 권력자에 따라 이용되었다.

 

고대에는 계급에 따라 처벌이 달랐고,  현대에도 정보와 자원, 경험을 가진 쪽이  법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고 활용한다.  

그래서 법은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이지만 사실은 강한 자에게 더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게된 불편한 진실이 있다.

평등과 공정은 이미 실현된 상태가 아니라  법이 끊임없이 지향하는 방향에 가깝다.  

 

법이 무너지면 정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지금도 유지되고 믿게 된다.

결국 법이 원하는 것은 사회질서 유지와 분쟁의 해결이다.

그 해결을 합의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강제력이 동원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법의 판결에 동의하지 못한다.

법은 그저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유지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법은 그러한 불편한 진실위에 정의와 공정이라는 언어를 덧씌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냉정하게 보면 법은 정의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단지 법은  정의와 진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최소한의 형식이다.  

결국 법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지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만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법을 믿고 싶어한다.

그 어떤 신앙보다도 법이 공정하게 판단해주길 믿는다.

그래서 인간은 모순이다. 법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만큼은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이다.

 

중국 생활 9567일이면 26년이 넘은 시간이다. 26년을 중국에서 살고 있지만, 회사와 분쟁에 휩싸였다.

법까지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26년의 살았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또한 업보일까?

미련한 생각이지만 미련하게 생각해본다.

 

 

By Dharma & Maheal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