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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 다시, 100일 정진,  59일차

<非思量處/비사량처/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識情難測/식정난측/의식과 뜻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공 (空) 과 허(虛)는 단순히 비어있는 상태가 아닌, 비움이라는 상징을 보여주는 문자이다.

공이 고정될 수 없는 인연의 변화를 비움의 역동성을 포함했다면,

허는 보이지 않는 도심으로 비어 있지만 충만함의 근원을 표현했다.

그 텅 비어있는 도는 만물의 기원이며 움직이지 않는 부동함이다.

부동한 자리를 허라고 한다면 그 움직이는 변화의 역동성은 바로 공이 아닐까.

즉 체(體)는 허가 되고, 용(用)은 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공의 뜻처럼 고정되지 않았다.

도는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체용불이(體用不二) 다.

그렇기에 공과 허는 같은 비움을 표현하지만, 상태가 아닌 상징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허명자조(虛明自照)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불로심력(不勞心力) 애써 마음 쓸 일이 아니로다

비사량처(非思量處) 생각으로 헤아릴곳 아님이라

식정난측(識情難測) 의식과 뜻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이것은 나의 얕은 생각으론 알려고 해도 헤아릴 수 없는 경지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성게(法 性 偈) 는 이러한 경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즉, 깨우친 지혜로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경계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찍이 선지식들 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르겠다면 그냥 믿어라.

내 근본이 있음을 믿고 거기에 전부 맡기라고.

사실 의심은 믿음으로 가는 문과 다름 없는 것이 아닌가.

크게 의심해야 크게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이 뜻이 아닐까.

그러니 의심은 분별이지만 분별 또한 버릴 것은 아니다.

그 또한 깨달음으로 가는 통로가 되니까.

이제는 공이 굴러 간다.

 

 


주: 非思: 아닐 비, 생각 사: 생각은 ~ 아니다.

量處: 헤아릴 량, 곳 처: 헤아릴 곳

識情: 알 식, 뜻 정: 안다는 것과 뜻으로는 즉 의식과 뜻으로는

難測: 어려울 난, 잴 측: 재기 어렵다. 즉 측정하기가 어렵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신라 시대 원효대사와 더불어 신라불교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침.

원효대사가 해골물 사건으로 당나라 행을 접어 신라에 남았으나 의상대사는 끝까지 당나라에 가서 화엄경을 완전히 체득하고 돌아옴. 그때 남긴 화엄경의 정수를 단지 210글자로 표현한 것이 법성게 임.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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