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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 다시, 100일 정진,  53일차

<兩旣不成/양기불성/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一何有爾/일하유이/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우리에게 어느 누가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보통 이름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름은 단지 편의상 부르는 라벨일뿐 실제 나를 온전히 나타내지는 못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타인에게 설명할 때는 이름 외에 성별, 나이, 직업 같은 표면적인 특성 뿐만 아니라 나의 드러나지 않는 성향까지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샅샅이 남에게 설명한다 해도, 여전히 나라는 존재를 상대는 가늠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 타인에게 아무리 이해 시켜려고 해도, 타인은 결코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나는 오직 나를 통해서만 나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이해하는 나는 오직 타인의 의식에서만 존재하지, 실제 나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타인 보다 더 잘 알 수 있을까.

어쩌면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지동무동(止動無動)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동지무지(動止無止)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양기불성(兩旣不成)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일하유이(一何有爾) 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나의 이름은 내가 아니라면, 나의 육체가 나 인가.

내 육체가 나라고 한다면, 내 육체는 어디서 왔는가.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나를 형성 시켰으니, 나는 부모의 것인가.

그럼 부모에게서 나온 나는 왜 부모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육체가 아니라면, 내 의식이 나인가.

그럼 내 의식은 언제 부터 나에게 있었을까.

엄마 뱃속에서 부터 잉태된 순간 부터 있어야 하는데, 그때 의식을 나는 기억하지도 못한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의식이 과연 나인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오늘의 질문은 인류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을 때 까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와 같다.

살아 있다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멈추는 순간이 온다.

그 멈추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 해답을 알게 된다면, 살아 있는 동안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은 그렇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진 존재이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만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둘이면서 하나이니 그 하나는 따로 홀로 있을 수 없다.

결국 나는 누구라고 확실히 답은 못하지만 태어남과 죽음을 경험하는 존재임은 확실할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은 모든 생명있는 존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주: 兩旣:  두 양, 이미 기: 둘은 이미

不成:  아닐 불, 이룰 성: 이루지 아니 하고

一何: 하나 일, 어찌 하: 하나는 어찌하여

有爾: 있을 유, 이것 이 : 이렇게 있는가

 


By Dharma & Mah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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