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44일차
<一切二邊/일체이변/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良由斟酌/양유짐작/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익숙한 것과 이별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늘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시간이란 바로 이별로 가는 기차와 같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익숙한 집을 떠나고, 아끼던 물건들을 버려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이별을 해야 새로운 만남을 할 수 있다.
정든 것들과의 이별은 또 다른 정을 들여야 할 대상과의 만남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별과 만남은 또 둘이 아니다.
이별에 아쉬워 하는 것, 만남에 설레이는 것.
어느 것 하나 고정되지 않았다.
이별에 아쉬워 할 것도, 만남에 설레이는 감정도 사실 모두 다른 것이 아니다.
미생적란(迷生寂亂)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로움이 생기고
오무호오(悟無好惡)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일체이변(一切二邊)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양유짐작(良由斟酌)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다
깨우침은 모든 이별과 만남으로 부터의 벗어남이다.
좋음과 미움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분법 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것이다.
좋음과 미움도 둘이 아니고, 이별과 만남도 둘이 아니다.
그러니 깨달음도 깨닫지 않음도 둘이 아니다.
미혹에서 깨달음이 잉태 된다.
술잔에 술을 따르니 술은 술잔에서 다시 차오른다.
술병이 떠나 보낸 술은 술잔으로 옮겨져 어느 덧 마른 입술을 적시고 뜨거운 기운으로 흘러 내려간다.
술과 나는 둘인가.
짐작하며 술을 마신다.
술 잘 따랐다.
주: 一切:한 일, 모두 체: 일체, 즉 모두 하나가 되어
二邊: 둘 이, 가 변: 양쪽 변
良由: 참으로 량, 말미암을 유 : 참으로 말미암아
斟酌: 따를 짐, 술따를 작 : 짐작하여, 즉 짐작의 어원은 술 따를 때 어림짐작으로 따르는 것이라 한다.술잔에 많이 따를 수도, 적게 따를 수도 있다. 술잔을 기울여 따르는 술이 어떻게 한 방울도 틀리지 않게 따를 수 있으랴, 술을 따르듯 넘치지 않게, 또 적지도 않게 끔 사량으로 헤아리는 것이 바로 짐작이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