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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 다시, 100일 정진,  38일차

<欲趣一乘/욕취일승/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勿惡六塵/물오육진/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란 공간과 시간의 무대에 올라서게 된다.

이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무대의 막이 내릴 때 까지 한 바탕 연기를 해야 한다.

우리 인간이란 배우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 연극 무대에서 우리의 연기는 잘 짜여진 극본대로 대사를 외우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즉흥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

배우인 우리 자신은 이게 연극인지 전혀 모르며 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연극의 무대를 지켜 보는 관객이 도대체 누구인지는 우리는 모른다.

무대 위의 연기자인 우리는 연극 무대에 펼쳐진 소품들이 소품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을 움직이는 그 가운데 그 모든 등장 인물과 사물들이 전부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대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본은 이미 우리가 펼치는 연기 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외운 대본이 아닌  우리의 심연에 대본이 이미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말나식과 아뢰야식이라 불리는 나라는 아집과 무의식이 바로 대본이다.

 

이러한 연극의 구조를 눈치를 챈 사람들이 우리 중에 일부가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붓다였다.

붓다는 이러한 매트릭스 같은 현실 구조를 간파하고 그 구조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의 세상이 매트릭스 같은 구조였음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그 구조 안에 벌어지는 모든 것이 실제라고 믿고 있는 한 벗어 날 수 없다.

왜냐면 우리의 감각 기관은 너무나 생생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픔이란 통각(痛覺)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이것이 연극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벗어나야 하는가.

 

욕취일승(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물오육진(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매트릭스 실체에 접근할 차례다.

 

주: 欲趣: 바랄 욕, 향할 취: 향하고자 바란다면

*一乘: 한 일, 탈 승:  탈 승은 수레에 태우는것을 뜻한다.

대승(大乘), 소승(小乘) 불교 할 때의 '승(乘)'은 중생들을 수레에 태우고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것을 의미한다. 대승은 수많은 중생들을 태우는것이고 소승은 그보다는 적은 수의 중생들을 태우고 가는것 이다. 따라서 여기서 일승은 깨달음의 세계로 수레를 타고 가는것을 말한다.

勿惡: 금할 물, 미워할 오 : 미워하지 말라

*六塵:여섯 육, 티끌 진: 여섯 가지 티끌, 여기서 여섯까지 티끌이란 우선 우리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즉 여섯 가지 인식의 뿌리에 해당하는 육근(六根)을 뜻한다. 이러한 육근은 즉 눈, 귀,코, 혀, 몸, 뜻을 가지고  육경(六境) 즉,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즉, 빛,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을 만나서 생기는 번뇌의 티끌이 바로 육진(六塵)이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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