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의식의 지도-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경계선
어제 1일차에서 던진 질문을 이어가 보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켄 윌버는 의외로 단순한 대답을 내놓는다.
인간은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존재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어디에 경계를 긋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이다.
피부 안은 ‘나’, 피부 밖은 ‘나 아님’ 이라고 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경계는 피부다. 피부 안쪽은 ‘나’, 바깥쪽은 ‘나 아닌 것’.
켄 윌버의 이 견해 대로 사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왔다.
내 손, 내 발, 내 몸은 ‘나’ , 남의 손, 나무, 돌, 하늘은 ‘나 아님’ 같은 이 구분은 너무 익숙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을 때, 아픈 아이를 돌볼 때, 혹은 누군가의 고통에 깊이 공명할 때 ‘나’와 ‘너’의 경계는 분명히 옅어진다.
경계는 고정된 선이 아니라 상황과 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가변선(可變線)에 가깝다.
켄 윌버는 이 경계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층위로 존재한다고 본다.
그는 이를 가르켜 의식의 스펙트럼이라고 규정했고, 그 경계를 넘어가는 방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먼저 가장 위에 있는 스펙트럼은 페르소나 수준이다.
사회적 역할과 가면에 따라 “나는 회사원이다”, “나는 아버지다” 라고 규정된다.
다음 아래로 내려가면 자아 수준 이다.
심리적 동일시 “이 감정은 나다”, “저 생각은 내가 아니다” 라고 보았다.
다시 내려가면 켄타우로스 (신심통합 身心統合) 수준이다.
몸과 마음의 경계가 느슨해짐에 따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지는 상태다.
다시 다음은 초개인적 수준이다. 이때 나와 타인, 나와 세계의 경계 확장되며 깨달은 상태에 가깝다.
2년 전의 나는 이 과정을 일종의 ‘의식의 상승’이라 보고 계단을 오르듯 위로 올라가는 구조로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이건 위로 오르는 사다리라기보다 빨대 안의 굴곡에 가깝다.
각 굴곡을 지날 때마다 “여기가 전부다”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모든 굴곡은 하나의 통로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신심명이 말하는 ‘일종(一種)’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이 모든 굴곡을 포함한 빨대 전체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신심명에서 반복해서 경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취사심(取捨心)과 간택심(揀擇心) 이다.
이것은 취하고, 저것은 버린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우리가 경계를 긋는 바로 그 마음이다.
그래서 신심명은 이렇게 말한다.
양유취사(良由取捨) 소이불여(所以不如) 즉, 취하고 버리는 마음 때문에 여여하지 못하다
켄 윌버가 “경계를 넘어가라”고 말한다면,
신심명은 이렇게 말하다.
“경계를 넘기 전에, 경계를 긋고 있는 그 마음부터 보라.”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이어진다.
이 모든 경계들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선과 악, 삶과 죽음, 나와 남… 이렇게 분명해 보이는 이분법들이 사실은 하나의 연속체라면?
다음 여정은 켄 윌버의 핵심 개념인 <‘무경계(No Boundary)’> 를 통해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들여다 볼 것이다.
경계가 사라질 때 의식은 어디로 향하는가?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