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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오늘 이사를 했다.

11년을 살았던 이곳 북경의 왕징 아파트에서 근처 외곽의 작은 아파트로 옮겨갔다.

몇 일 전, 이삿 짐을 꾸리던 중에 아주 오래 전에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부모님의 이사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집은 참 이사를 많이 했다.

내 기억 속으로 울산으로 올 때가 내가 6살때인데  지금 까지 약 30년을 넘게 울산에서만  살았는데 그 시간 동안 이사를 간 게 20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을 했었는데 이제는 가물 가물 해진다.

 방어진부터 시작 해서 주로 동구를 왔다 갔다 했지만  구(區)를 넘나들어 중구(성안동) 에서도 산적이 있다.

너무 이사를 자주 해서 한번 씩 집 떠나 있을 때 마다 집이 바뀌어져 있다. 

군대 갈 때 집(대송동)과 휴가 나올 때(전하동 아파트)와 제대 할 때(서부동)가 다 틀리다.

중국 갔다 올 때도 마찬가지, 유학 하러 갈 때(서부동)와 들어오니 집(2층 상가 주택)이 틀리고, 결혼 하기 전(성안동)과 결혼 후(방어동) 들어오니 집이 이사를 했다.

전에는 이런 것들에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부모님 나이를 점점 드시니 생각이 많아진다.

왜 이러고 사시는가.

나도 한국에 없고 동생도 결혼 했고 부모님 두 분만 사시는데도 왜 이사를 다니실까?

 

이사 한번 해 보면 알겠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거의 연례 행사 맞이 하듯이 자주 하시니 이삿짐 싸시는 데는 도통 하신 걸까?

이제는 제발 그만 이사를... 

오늘도 아버지와 통화하다가 올해 어쩌면 남창으로 이사 하실 수도 있다고 하길래

속에서 울컥 하고 올라 온다.

또 ..  도대체 왜 ?

왜 우리 집은 집이 없는 걸까? 왜 이사를 해야 하는 걸까? 오늘 통화를 하면서 속으로 부모님께 원망스런 마음이 올라 오길래 잠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사실 부모님 이사 하시는데 내가 도움 준 것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이삿 짐 싼 적이 없으니...

고생은 부모님만 하시는 거였다.

내가 불편 하기 때문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나는 거였다.

사실 사시는 부모님이 더 불편하시지 만 그걸 감수 하면서 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텐 데 나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었다.

 

마음속에 놓고 간절히 고한다.

이제는 부모님께서 안정 되고 편안하게 살게 해야지.

행복 하게 살게 하셔야지.

 

아예 이왕 이사 하시는 것 차라리 절 근처로 이사 할 수 있도록 마음 내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마음을 닦으시면서 여생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는 난 중국에서 비교적 이사 없이 오래 사는 편이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중국에서 이사 횟수를 잠시 계산 해봤다.

중국에서  13년째 생활 하고 있는데 지금 사는 집에 오기까지 이사를 5번을 했었다.

또 회사 숙소 때문에 나만 매년 마다 계약 된 숙소를 옮기느라 이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사는 우리 가문의 숙명일까? 업 일까?

정말 업 이라면 녹이고 싶다. > 2012 년 9월 12일 일기 중에서....

 

이번에 내가 11년만에 이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두 아들이 모두 한국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아내와 나,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줄여가는 선택을 해야 했다.

13년 전, 부모님의 이사를 보며 '이사라는 업'을 끊겠다 던 나는 결국 한 곳에서 11년을 버텼으니, 나름의 정박(碇泊)에는 성공한 셈이다.

 

오늘 이사를 해 보니…. 

역시 이사는 힘들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힘든 일을 연래 행사로 하셨었다니…. 

이제 내가 당신들 부모님 나이가 되어가니 이제는 이사하게 되는 심정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어진다.

누군가 말하길 ‘방황은 아름답다’ 고 했다 지만 부모님의 그 수많은 이사 또한 방황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방황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당신들의 현재의 힘든 삶을 담보로 미래에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자리를 찾기 위한 치열한 삶의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들을 건사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해야 했던 그 고단한 방황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11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같다.

결국 부모님의 방황은 아름답진 않지만 아련해진다.

 

이사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기분도 우울한 점도 있고 무엇보다 새로 머물 곳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내 맘에 드는 곳을 찾는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아파트가  즐비 하게 서 있지만 그 곳 어느 한 곳도 내가 머물 자리가 아니라는 게 참 신기하다.

 

오늘 이삿짐은 새집에 부려 놓았지만, 계약 해지를 앞두고 마지막 추억을 정리하러 다시 비어버린 옛 집으로 돌아왔다.

이사는 공간의 이동이다. 

이제 다시 이곳에 못 올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 본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이 공간과는 영영 이별이다.

참 좋은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이 공간은 이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좋은 공간을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겠다. 

참 고마운 곳이었다.

이사, 몸은 떠나도 마음은 남는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이사를 '업' 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그저 삶의 여정이었다.

13년전의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제 이 일기는 앞으로 몇 년 뒤에 다시 읽히게 될 까?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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