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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2일차: 내전, 금기일까? 동력일까?

 

내전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와 다름 없다.

입에 올리는 순간,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위험 인물로 분류된다.

내전은 악이며, 절대 다시는 언급되어서는 안 될 재앙이라는 합의가 이미 굳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정말 그럴까?

 

역사를 거칠게 훑어보면, 한 사회가 완전히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내부의 균열, 폭력적인 충돌, 그리고 질서의 붕괴다. 그것은 미화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동시에 현실을 재편하는 동력이었다.

 

일본을 보자.

세키가하라 전투는 내전이었다. 그 결과 도쿠가와 막부가 탄생했고, 일본은 260년의 안정된 통치 구조를 얻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세이난 전쟁이라는 내전이 있었다. 마지막 사무라이들이 몰락한 그 전쟁은 일본을 근대 국가로 밀어 올리는 결정적 계기였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 남북전쟁은 단순한 지역 갈등이 아니었다. 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내전이었다. 그 전쟁을 통해 연방은 강화되었고, 노예제는 역사에서 퇴출되었다. 오늘날의 미국은 그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산물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내전을 이미 겪었다. 6.25는 외세가 개입한 국제전이었지만, 동시에 명백한 내전이었다. 그 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했다. 국가 중심의 질서, 산업화, 강력한 통제와 동원 체제가 그 후유증 속에서 만들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한국 사회는 내전을 “끝난 사건”으로만 기억하려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전은 끝났어도, 내전을 만들어낸 무의식은 끝나지 않았다. 억눌린 채 다른 형태로 변주되며 살아남았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늘 전쟁의 언어를 사용한다.

상대는 경쟁자가 아니라 적이다.

타협은 배신이고, 중간은 기회주의다.

정치는 협상이 아니라 섬멸전이 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는 여전히 “한 번 더 뒤집어야 끝난다”는 감각이 남아 있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내전의 기억이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전을 무조건 악으로만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내전 자체가 아니라 내전을 직시하지 못하는 태도가 더 위험하다고 본다.

 

폭발은 억눌린 것의 언어다.

내전은 사회가 스스로를 속여온 댓가다.

균열을 관리하지 못하면, 균열은 언젠가 폭력으로 폭발한다.

한국 정치가 지금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인의 자질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미뤄온 질문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

질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성장은 누구를 살렸고, 누구를 버렸는가?

 

이 질문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한, 정치는 계속 전쟁을 흉내 낼 것이다.

실제 총칼이 오가지 않을 뿐, 심리적 내전은 이미 진행 중이다.

 

나는 이 글이 불편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불편하지 않다면, 무의식에 닿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전은 다시 오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내전이 남긴 질문에 답하지 않는 국가는 더 위험해진다.

우리는 지금, 총 없는 내전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것은 어떤 계엄이나 탄핵의 문제를 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도록 누적되어 온 무의식의 분열이다.


피 흘리는 내전 과연 동력이었을까?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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