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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7일

관노트: 화양연화(花樣年華), 그 비극적 선율에 담긴 캄보디아.



치파오를 입은 여인의 허리 선이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구두소리, 말끔한 슈트를 입은 남자의 손 끝에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그 둘의 공간에서 흐르는 왈츠로 시작되는 선율. 그 뒤를 따라오는 현의 음에는 슬픔이 담긴 애절함이 있다. 왈츠의 음률과 닿을 듯 말 듯한 현의 음은 마치 두 남녀가 서로 닿을 듯 말 듯한 선을 지키듯, 한 음 한 음에는 서로 다른 감정이 돌고 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즉, 일생에서 가장 눈부신 한때를 말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의 침묵 속에 담긴 절제된 눈빛만큼 보이지 않는 감정은 오히려 애절해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양조위는 앙코르 와트를 찾아간다. 무너지고 폐허가 된 앙코르 와트 벽의 구멍에다 양조위는 무언가를 남기고 속삭인 후 흙으로 막아버린다.

고대 사람들은 비밀이 생기면 산속 나무나 바위에 뚫린 구멍에 비밀을 속삭이고 봉인을 했다고 한다. 양조위가 앙코르 와트에서 봉인한 것은 화양연화라 여긴 사랑의 봉인(封印)이었을 것이다.



캄보디아, 지금은 범죄 집단 소굴이 되어 버린 나라. 한 때는 앙코르 와트를 만든 크메르 제국 문명을 지녔던 나라였다.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그 시절 크메르 제국은 동아시아의 강력한 제국이었다. 앙코르 와트는 단지 불교 사원이 아니었다.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된 석조 문화로 우주를 재현하고자 했던 곳이다.

영원할 것 같은 크메르 제국은 서쪽의 시암왕국(태국)에게 전쟁에서 짓밟히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기고야 만다. 이때부터 크메르 제국은 멸망하고 서쪽엔 태국, 동쪽에는 베트남에 끼인 샌드위치 국가로 전락하고야 만다.

그 나라가 바로 오늘날 캄보디아이다.


캄보디아 국기에는 예전의 강성했던 흔적인 앙코르 와트 건물을 집어넣었다. 

전 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건물을 넣은 나라인 셈이다.19세기에 이르자 캄보디아는 태국의 내정간섭과 베트남의 군사적 압박에 못 이겨 왕실은 프랑스에게 보호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즉 캄보디아는 외세 침략에 의한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닌 스스로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자 했던 것이다. 캄보디아는 주위의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어쩌면 우리의 구한 말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우리와 많은 차이가 나게 되었을까?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 후 캄보디아는 베트남 공산당의 지원으로 1951년에 크메르 인민 혁명당(KPRP)가 세워진다. 이때 급진 좌파인 폴 포트(Pol Pot 본명: 살로트 사로)에 의해서 ‘크메르 루즈’를 조직하게 된다. 크메르 루즈는 ‘크메르 붉은 조직’ 으로 캄보디아 무장 공산당 세력이란 뜻이다.

바로 그 유명한 킬링필드가 크메르 루즈 조직에 의해 잔인하게 진행된다.

폴 포트는 196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 마르크스 레닌과 마오이즘에 심취한 후 자신의 사상을 정립한 후 중국의 문화 대혁명을 캄보디아에서 바로 실현한 것이었다.

농민만 순수하고 지식인과 종교인은 타락했다고 여기며 도시인들을 모조리 인종 청소를 한 것이다. 죽이는 데 총알이 아깝다며 몽둥이로 쳐 죽이고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인이라 몰아 죽이기도 했다. 그렇게 1975년~1978년까지 크메르 루즈는 프놈펜을 장악해서 약 200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을 무참히 학살했다.

 


현재 캄보디아는 아직도 이때의 사건을 역사에서 지워 버리고 어떠한 성찰과 반성도 언급하지 않는다. 캄보디아인 모든 국민의 가족 중에 이때 죽지 않는 가정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다. 

나라 전체가 PTSD에 걸려 있는 것이다.

크메르 루즈는 이 과정 중 베트남 공산당과는 거리를 두고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게 된다. 폴 포트는 마오쩌둥을 숭배하였고 스스로가 그렇게 되길 바랬던 것이다.

캄보디아 무자비한 크메르 루즈 정부를 중국은 유엔에서 합법 정부로 인정할 만큼 지원을 했다.

왜 중국은 캄보디아를 지원할까?


중국이 캄보디아를 지원한 이유는 당시엔 소련과 베트남을 캄보디아를 이용하여 견제하려는 목적과 지리적 이점을 챙기려는 내막이 있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1979년 크메르 루즈는 베트남과 국경 문제로 충돌하고 만다. 이때 베트남 공산당은 프놈펜을 함락시키고 크메르 루즈를 쫓아내고야 만다.

그 강력했던 크메르 루즈는 무너지고 친 베트남계 세력인 현재 총리 집안의 훈센 전 총리가 집권하게 된다. 훈센 전 총리는 1985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38년 7개월의 장기 독재 정치를 하게 된다. 지금은 자기 아들에게까지 총리를 세습한 사실상 북한과 같은 왕조를 만들고 있다. 사실 캄보디아에도 태국처럼 국왕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캄보디아 왕실은 아무런 힘도 없는 들러리에 불과 하다.


38년의 장기 집권 중에 친 베트남계와 친 중국계의 정치인들은 서로 카르텔을 만들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캄보디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에 적극적 참여로 중국 정부의 항만 도로 공항 같은 건설부터 카지노 관광까지 막대한 중국 자본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때 중국에서 삼합회 같은 흑사회 조직이 캄보디아로 넘어와 합법적인 사업 투자로 꾸며서 사업을 벌이게 된다. 그게 바로 스캠 컴파운드(Scam Compound) 즉 “사기 범죄 복합단지”를 만든 것이다.




스캠은 이제 단순한 사기가 아니다.

이들은 메스컴에 알려진 대로 강력한 카르텔로 이루어져 캄보디아 정계까지 장악하여 지하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중국의 범죄 단체는 캄보디아를 기점으로 미얀마, 베트남, 태국까지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이미 이들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이 범죄 단체를 단속하고자 미얀마에 경찰을 파견하여 조직을 소탕하는데 그 규모는 일반 조직폭력배 소탕 수준이 아니다. 몇 만 명 단위로 조직에 얽힌 사람들을 잡아오는데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이 아직도 캄보디아 스캠에 연루되어 감금되어 있다고 추산하는 인원이 30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얼마나 감금되어 조직에 이용되고 있는지 정확한 숫자도 없다.

무엇이 이들을 캄보디아로 오게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잘 이해가 안 된다.


캄보디아에서 화양연화를 이루려는 꿈을 꾼 것인가?

캄보디아의 화양연화는 이미 끝났다.

앙코르 와트의 벽 구멍에 봉인된 비밀을 혹시라도 누가 해제를 하는 날이 오게 될까?



🖋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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