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보이차 한잔

관노트: 10월 1일

글 제목:  요우커 100만명 시대의 씁쓸함에 대하여


오늘부터 중국은 8일까지 국경절 장기 휴일에 들어 갔다.

우리 정부는 9월 29일부터 중국인 요우커(游客: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였다.

작년에 중국이 이미 우리에게 일방적인 한 달짜리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 준 후 우리 정부도 상호 주의에 근거하여 같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셈이다.

이번10월 국경절 휴가를 맞이하여 정부 추산으로 약 100만명이나 달하는 요우커의 무비자 입국이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숫자만큼 우려가 깊다. 요우커 유치로 단기적 경제 활성화라는 장미빛 희망이, 장기적 국익과 안전을 위협하는 자충수가 되지는 않을 런지 걱정이 앞선다.


원래 우리나라의 경제의 근간은 동남아 지역의 국가와는 다르게 관광 산업이 아닌 제조업과 최첨단 기술이다. 혹여 나중에 요우커들이 등을 돌릴 경우에는 어떻게 할 지 대비하지 않고, 시스템 취약성을 개선하지 않으며 단기적 특수에 매달리는 것은 국가적 전략적 방향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한 가지 큰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그 전조 현상으로 아주 사소한 경미한 사건 300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보다는 엄중한 사건 29건이 발생한다. 그때 그러한 전조를 무시하면 마침내 크나큰 재앙과도 같은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국가적 전산망 화재로 인해 행정, 보안 시스템의 허술함이 드러났다.

이러한 때에 요우커 100만명이 무비자로 입국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 정말 걱정이 된다. 이러한 우려를 가짜 뉴스라고 치부하는 언론도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가짜 뉴스는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인지…

미국이나 유럽 같은 사법 체계가 엄격한 나라 조차도 해마다 1% 정도의 불법 체류자를 놓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과연 더 철저하게 걸러낼 수 있을까?

정부가 내세운 사전 서류 심사 진행은 서류 조작 가능성, 여행사 통제 문제등이 발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말 실효성이 있을지…

과연 요우커의 국내 체류 동선을 얼마나 잘 관리하게 될지 가늠이 안된다.

100만명의 1%는 1만명이다.

그 1만명이 불법 체류를 하게 된다면 누가 관리할 것인가?

요유커로 인해 활성화되는 경제적 이익보다 불법 체류자, 범죄자 관리에 들어가는 치안, 행정, 통역 인원 및 수용 시설까지 모두 우리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과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 이익 대비 낭비하는 혈세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최근 몇 년 전부터 캄보디아에서 중국인 범죄 집단 중심으로 한국인 유괴 납치가 이루어 졌다. 납치된 한국인 들은 보이스 피싱, 금융 사기, 장기 매매 같은 끔찍한 범죄에 연루되고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지만 이러한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해마다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법 제도와 중국의 사법 제도를 비교하면 처벌 수준은 솜방망이에 불과 하다. 그들이 그 점을 악용하여 극히 작은 일부라도 범죄 집단이 국내에 거점을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라고 이러한 범죄 집단과 연결이 안된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요우커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또한 모든 중국인을 악마화 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 그건 불의이다. 하지만 1% 악의를 가진 자에 대한 대책과 검증에 대한 시스템이 정말 잘 작동되고 있는지 불안은 정당하다.

제발 하인리히 법칙에 지배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는 나 같은 50대, 기성세대는 단기적 경제 논리에 함몰되어 젊은 세대가 살아갈 미래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책을 묵과해선 안된다.

여당의 안일한 자신감이나 야당의 공포심 유발 발언 모두 실질적 대안 없는 각자도생 같은 무책임한 말로 들린다.

이 문제의 원인은 정치권에 있지만 특히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감시하고 강력한 대안을 촉구해야 할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인리히 법칙이 지배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적어도 당장은 국가의 최소의 의무를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투명한 수치와 시스템의 작동을 보여 줘야 하며, 시민은 일상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다시 돌아와 믿어야 할 것은 내 자신 뿐이라는 냉소만 짓게 된다.

믿어야 할 것은 깨어 있는 내 근본 뿐이다.

나의 젊은 시절, 25년 간을 살아왔던 중국이 어쩌다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참으로 씁쓸해진다.



🖋 Dharma & Maheal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