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8월 16일
글 제목:
신춘추전국시대의 간쟁(諫諍)
2500년전, 천하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였다.
평화보다는 전쟁이, 안녕보다는 불안이, 화목보다는 분쟁이 일상이었다.
2500년이란 시간이 흘러 현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나는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바야흐로 디지털 춘추전국 시대로 도래했다.
춘추시대의 전차 대신 피드(feed)가 질주하고, 제자 백가들의 세치 혀는 알고리즘으로 증폭되고
있다.
춘추시대 타임라인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분노는
‘좋아요’로 정량화되고, 서사는 짧은 영상으로
압축된다.
이 소란의 중심부에서 정치는 가속 페달만
밟고, 브레이크는 고장나 버렸다.
어쩌다 우리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정치는 본질적으로 갈등 조정의 기술이다.
그런데 조정 이전에 선택이 온다. 선택은 감정으로 쉬워지지만 결과는
감정으로 망가진다.
분노는 즉각적 보상을 주지만 장기 비용을
숨긴다.
서사는 결집을 만들지만 서사가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진실은 전리품이 되고, 제도는 장식이 되어버린다.
그때 우리의 공동체는 이미 추락 궤도에 접어들게 된다.
원칙은 사람보다 앞서야 했다.
이름을 지우고도 설득되는 문장인지, 절차·법치·권한 통제가
지켜졌는지, 독립기관이 두려움 없이 일할 수 있는 구조여야 했다.
바로 그것이 정명(正名)이고, 최소한의 방호벽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좋은 의도도 흉기가 된다.
승자의 자만은 법을 도구로 만들고, 패자의 집착은 절차를 폐지하려 한다.
승자든 패자든 둘 다 결국
제도라는 다리를 불태워 버린다.
수치(數値)는 말의 검증서다. 국가의 말은 지표로 환산될 때만 현실이 된다.
물가, 가계
이자부담, 전월세 상승률, 청년고용의 ‘질’, 수출·투자 흐름, 재정수지와 국채금리, 환율 안정성,
안보 사건과 억지력등.
이 모든 항목에 대해 분기마다 개선되는지, 악화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설명이 길수록 숫자는 짧아져야 한다.
책임은 말이 아니라 추세선으로 져야 한다.
두 축을 곱해 보자.
법(원칙과 정당성) × 성과(수치와 실력)이 高법치·高성과로 나오면 신뢰, 高법치·低성과가 되면 개선 전제 조건부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답이 低법치·高성과로 나오면 위험한 효율이니 거부해야
하고, 低법치·低성과 라면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이 매트릭스가 투표 한 번의 계산을 넘어, 매일의 시민 행위가 되면 선동은 힘을 잃는다. 왜냐하면 선동은 감정의
시계를 앞당기지만, 지표는 시간을 정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요구할 것은 간단하다.
서사를 줄이고 데이터 대시보드를 늘려라. 공약은 KPI로 번역하고, 분기별
목표-실행-검증을 공개하라.
실패하면 즉시 대안 플랜 B로 전환하라. 사면·인사·감사의 기준을 규칙으로 명문화하라. 외교·안보·경제의 돌발
변수엔 자동 안정화 장치를 걸어라. 법원과 감사, 통계기관의
독립을 권력의 외벽으로 삼아라. 그 외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지지율은
단지 지연된 붕괴일 뿐이다.
야당과 비판자에게도 주문이 있다.
분노를 원칙으로 냉각하라. 감정적 언행을 줄이고, 기록·판례·절차로 말하라. ‘순교 서사’를
절제하라.
폭력과 불복의 유혹에서 물러서라. 중도를 설득할 언어는 언제나 근거다.
근거가 약하면, 오늘의 환호는 내일의 고립으로 돌아온다.
시민의 자리는 더 중요하다.
뉴스는 하루 20분만, 가계의 숫자는 매일 10분
이상.
가족의
KPI, 현금흐름, 부채 금리, 식비·주거비, 건강·관계가 정치
뉴스보다 먼저다.
의견을 말할 때는 출처·기간·비용·대안을 함께
제시하라.
이름을 가리고도 설득되는 문장만 남겨라. 내 가족과 이웃이 모여 공동구매와 돌봄·비상연락망을 공유할 때이다. 국가는 이런 작은 질서의 합이다.
역사는 경고한다. 오왕 부차의 패망은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측정하지 못한 자신감, 절차를 압축한 효율, 반대의 목소리를 무시한 오판이 무너뜨렸다. 반대로 구천은 분노를
연료로 삼았고, 치욕의 순간을 끝내 견뎠다. 그는 감정을
안으로 묶었고, 냉정을 유지했다. 마침내 월왕은 살아남았다. 그래서 살아남음은 때로 승리보다 어렵다.
지금 우리의 정치도 이와 같다. 선동은 빠르고, 숫자는 느리다.
선동은 박수 소리를 모으고, 숫자는 침묵 속에서 신뢰를 쌓는다.
선동은 지도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숫자는 제도를 신으로 만든다.
우리가 택해야 할 쪽은 분명하다. 원칙 위에 서고, 수치로 말하는 세상.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세상. 느리지만 도착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와 서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원칙이며, 수치다.
선동과 감정에 휩쓸려 원칙과 수치가 사라지면
2500년전에 사라진 춘추시대의 나라들과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린다.
신춘추전국시대,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