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지은이: 홍대선
제 목: 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
모든 신념은 숭고해 보이지만 덧없다. 또한 모든
죽음은 덧없어 보이지만 숭고하다. 신념과 죽음이
다시 광기(狂氣)와 결합하여
숭고했으나, 덧없었던 역사 이야기를 이번 겨울에 읽었다. 일본의 사무라이와
유신(維新) 그리고 박정희(1917~1979)에 관한 역사 이야기다.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주제들을 저자 홍대선은 해박한 역사지식에서 연결점을 찾아내 고리를 만들었다.
이 책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는 일본 열도에서 태어난 유신(維新)이라는 정념(情念)의 일대기이자
유신심미주자의 (維新審美主義者) 고백이기도 하다.
사무라이(侍)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선명하다. 빠른 칼 부림 속에 피가 솟구치고 살이 떨어져 나가버린다. 삶과 죽음을 가르던
칼 끝에서 선혈이 떨어지는 순간 털어내 칼집에 다시 착검하는 장면은 영화 속 비정한 사무라이 모습이다. 이들은 살인과 피를
항상 몰고 다니는 자들이다. 그들은 적과 싸우다
죽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명예를 위해 자신의 배를 가르는 할복과 그 뒤에서 개착(介錯, 카이샤쿠), 즉 할복자의 목을 내리치는 끔찍한 전통을 소위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여겼다.

작가 홍대선은 유신의 씨앗이 되었던 사무라이 정신의 기원을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일본 열도 침공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략은 당시 열도의 일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였으며 그들은 지금도 '무구리코구리 (むくりこくり 한자어: 蒙古 高句麗)’ 라 하면 바로 공포와 분노를 뜻한다고 한다. 이때의 공포감은 열도인들에게 처음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형성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부세계와 외부세계로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내부세계는 열도인들이 사는 성스러운 본토이고 외부세계는 열도 밖에서 오는 침략자를 일컫는다. 외부세계에 의한 본토의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 일본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고 다행히 신풍(神風, 카미가제)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신들의 신토(神土)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에게 하나의 관념이 되어 이후에 유신이 자라나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음을 저자는 믿는다고 했다. 다소 비약적인 논리이긴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갔다.

원래 유신이란 말은 사서삼경 중 서경(書經)에 기록된 표현이라고 한다.
서경에 따르면 주나라(周 B.C 1046~ B.C
256)가 체제를 완전히 새롭게 정비해 국난을 극복하고 되살아난 사건을 유신이라고 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1876)은 막부를 뒤 짚어 엎은 신정부 세력이 자신들의
성공에 대한 표현을 서경에서 찾아내 유신이라 부른 것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일어난 유신이 훗 날 대한민국의
유신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본래 유신이란 기존의 체제나 제도를 유지하되
새롭게 정비한다는 뜻을 지녔다.
그러나 이러한 뜻과는 다르게 실제 역사에서
한일 양국의 유신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끝에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졌다. 또한 유신으로 이룬 신정부는 천황을 앞세운 제국주의 길을 걷다가 전쟁 끝에 결국 패망하고 야 말았다. 한국에서 유신은 한때 관동군 장교 ‘다카기 마사오’로 불렸던 우리나라 산업화의 영웅인 동시에
독재자라 불렸던 대통령 박정희에게서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박통의 유신은 결국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고백한 김재규의 총에 의해 완전히 사망하고
야 말았던 것이다.
한일 양국의 근현대사를 꿰뚫었던 유신의 일대기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사무라이 정신과 유신의
기원을 여몽연합군의 일본침공으로 잡은 것에 새삼 놀랐다. 이제껏 우리의 보편적인 반일감정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임진왜란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우리도 고려시대때 일본을 침략한 사실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당시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 때문에 고려는 어쩔 수 없이 일본 침략을 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쟁이란 것이 어떻게
어쩔 수 없이 참전 했다고 대충 임할 수가 있을까? 더구나 당시 고려의 군사력은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몽고군에 끈질기게 저항할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여몽 연합군을 칭해 무구리코구리라고 했던 것이 이해가 된다. 이민족이 자신들을 몰살시키려고 바다 건너서
쳐들어 오는데 어찌 공포가 아닐 수 있을까? 그것도 2차례나 대군을 이끌고 건너오는데 만약 일본인들이 믿는 신풍(神風) ‘가미가제’가 없었다면 일본 이란 나라는 그때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일간의 서로 적대적 감정의
골은 상당히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일본의 우리나라 침탈은 그때의 업보가
아니였나 싶다. 그런데 업보 치고는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니 였을까?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이 마침내 지나갔다. 동시에 혼란의
탄핵정국도 일단락되었다. 비록 봄은 왔지만 아직도 마음은 시리다. 정치적 신념이
신앙으로 되는 순간 점차 괴물로 변해 간다. 언론 매체는 겨울내내 괴물로 변해가는 정치 세력들의 아우성만 들려줬다. 어쩌면 또
다른 현대판 유신지사들이 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또한 그 와중에 황당한 죽음들이 우리 곁을 스쳐갔지만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폭발하여
죽고, 산불에 타서 죽고, 학교에서 칼에 찔려 죽고, 앞으로 어떤
사고가 닥칠 지 예측 못할 죽음이 탄핵정국보다 더 불안했다. 우리의 지난 겨울은 비뚤어진 신념과 헛된 죽음이란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이번 봄에는 그 모든 상처들이 전부 치유되고 어서 빨리 회복 됐으면 좋겠다.

상상과 구체적 내용은 관념과 정념이다. 관념은 믿음이다. 유신의 믿음은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해 남을 파괴해도 된다는 신앙이다. 정념은 욕망이다. 유신의 욕망은 스스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죽어도 되는 자기파괴의 충동이다.- P33
동아시아 사대부는 자신이 죽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순간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죽는다. 유신이 탄생하던 때, 거기에 뛰어들던 지사들의 투쟁은 가치 투쟁이다. 유신은 추상적인 명예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동아시아 사대부 정신적 구조에서 가능했다.- P52
이제 유신 자체가 된 일본은 죽음을 짝사랑하기 시작한다. 옥쇄, 반자이 돌격, 가미카제는 모두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P204
박정희는 사람을 진영이 아니라 ‘결‘로 파악했다. 박정희는 민족지사 중에서도 백범 김구와 도마 안중근을 자신보다 위대한 남자로 추앙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지사는 아름다운 결로 완성된다.- 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