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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3월27일

오늘의정진: 執指爲月枉施功/집지위월왕시공/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 100일 정진, 92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백 열한 번째와 백 열두 번째 구절은

<二乘精進勿道心/이승정진물도심/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外道聰明無智慧/외도총명무지혜/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亦愚癡亦小駭/역우치역소해/어리석고 바보 같아 겁이 많으니

空拳止上生實解/공권지상생실해/빈주먹 손가락 위에 있다는 생각을 내는도다> 였다.


빈 주먹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빈 주먹을 펴보이면 그저 손가락들만 쥐고 펼 수 있다. 손가락과 주먹은 사실 다르지만 같은 손이다. 주먹과 손가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주먹과 손가락이 다르다고 여긴다. 성문승과 연각승을 합쳐 이승인데 이것을 각각 분별한다면 도(道)에 이를 수 없다. 외도 또한 사이비라 여겨서는 도에 이를 수 없다. 분별심(分別心)은 도가 아니다.

영가스님이 입문했던 천태종은 교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선종과 다르지 않다. 천태종의 핵심 수행법은 지관수행(止觀修行)이다. 지관수행은 산란한 마음을 그치고(止), 자기 근본을 지켜보는(觀) 수행이다. 즉 선종에서 화두를 들고 깊이 몰입해서 참구하는 수행과 다르지 않다. 단지 종파가 다르다고 깨달음까지 다른 것은 아니다.

도심(道心)은 둘로 보지 않는 마음(不二心)이다.


오늘은 백 열세번째와 백 열네번째 구절

執指爲月枉施功/집지위월왕시공/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根境塵中虛捏怪/근경진중허날괴/육근, 육경, 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도다

不見一法卽如來/불견일법즉여래/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이니

方得名爲觀自在/방득명위관자재/마침내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는구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이 아님에도 손가락을 달로 여기는 우(愚)를 범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근, 육식, 육경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감각기관을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육근에 의해 인식하는 경계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육경(六境)이라고 한다. 육근과 육경을 합쳐서 12처(處)라고 부른다. 그리고 육경에다가 의식(義識)을 더하면 바로 육식(六識)이 된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육근, 육경, 육식을 합쳐 18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육근, 육경, 육식을 통한 현실인식은 사실은 오류투성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18계를 통한 인식은 단지 우리의 주관적 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즉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라고 했다. 이것은 관세음 보살이 반야심경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다. 오온은 바로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 이며 곧 우리의 몸과 마음을 뜻한다. 영가스님은 마침내 육근, 육경, 육식의 놀음이 바로 망상이며 공(空)임을 알게 되었다. 18계로는 법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음을 깨우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진정으로 관자재보살의 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일일 소견>

잘못된 공부란 둘로 보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닐까? 둘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공부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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