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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2월3일

오늘의정진: 行亦禪座亦禪 (행역선좌역선)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역시 참선이니

- 100일 정진, 40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서른 아홉번 째 구절은 

<自從認得曹溪路, 了知生死不相干 /자종인득조계로, 요지생사불상간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였다. 

 

영가스님(永嘉665~713)은 마침내 혜능선사(慧能 638~713)를 만나 본래 마음자리는 생사를 초월 하였음을 확실하게 인가를 받았다. 

이제 영가스님은 더이상 조계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지체 없이 곧 바로 혜능선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다. 

혜능선사의 영가스님을 향한 마지막 점검이 시작되었다.


“왜 그리 빨리 돌아 가려는가?”.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걸 아는가?”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있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장하구나. 창과 방패를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하고 혜능선사는 만류했다.

그렇게 영가스님은 혜능선사의 문중에 딱 하룻밤을 묵고 가게 된다.


영가스님과 육조혜능과의 인연은 단지 하루 뿐이었다. 

이후 이런 영가스님을 두고 일숙각(一睡觉) 이란 별칭이 생겼다.

그후 두 스님은 세상에서 더이상의 연(缘)은 없었다고 한다.

713년, 두 분 모두 같은 해에 원적(圆寂) 하였다. 

 

오늘은 마흔번 째 구절

行亦禪座亦禪 (행할 행, 또 역, 고요할 선, 자리 좌, 또 역, 고요할 선 )

행역선좌역선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역시 참선이니

語默動靜體安然(말씀 어, 침묵 묵, 움직일 동, 고요할 정, 몸 체, 안정 안, 그러할 연 )

어묵동정체안연 / 어묵동정에 본체가 편안하게 되리라

 

영가스님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조계에서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스승에게 확실한 깨달음에 대한 증명을 받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함이 없이 하게 된다. 

고요하고 깊어진 마음 자리가 바로 참선이다. 

행주좌와(行走坐卧), 어묵동정 (語默動靜) 의 상태, 즉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에서 또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도(道)를 떠나지 않는다. 

본체가 편안하니 아무 걸림이 없다. 


혜능선사 이후 수 많은 선의 대가들이 출현하였다. 

그 가운데 마조스님이 가장 출중 했다고 알려진다. 

마조도일(马祖道一 709~788) 스님이 깨닫기 전에 아주 열심히 참선을 하며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악회양(南岳怀让 677~744) 선사가 곁에 와서 보더니 물었다.

“그대는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는 가?”

마조는 답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답을 들은 남악회양 선사는 어디서 벽돌 하나를 가져 왔다.

그리고는 마조스님 옆에서 벽돌을 갈기 시작했다.

마조는 남악회양의 이상한 행동에 묻기 시작했다,.

“스님은 지금 벽돌을 갈아서 무엇에 쓰시렵니까?”

“아, 이걸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네.”

“아니,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하며 마조는 어이가 없었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이 될 수 없다면, 그대는 어찌 좌선을 한다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이 말에 마조는 깨닫는 바가 생겼다.

“그럼 어찌 해야 합니까?” 마조는 물었다.

“부처는 형상이 아니다. 앉아 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그것은 부처가 아니다.

어느 것에도 마음이 머무르지 말아야 한 다네. 

행주좌와 어묵동정 속에 부처가 있는데 그대는 어찌 좌선에 집착하는가?

수레를 칠 것인가? 소를 칠 것인가?”


<일일 소견>

묵묵히 좌선을 한다고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다.

무엇을 칠 것인가?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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