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2월2일
오늘의정진: 自從認得曹溪路 (자종인득조계로)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 100일 정진, 39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서른 여덟번 째 구절은
<遊江海涉山川 , 尋師訪道爲參禪 /유강해섭산천 , 심사방도위참선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 스승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라> 였다.
눈 밝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물을 건너고 산을 지나는 여정을 거쳐야 했다.
스승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볼 줄 안다.
그래서 스승에게 점검을 받는 것이다.
스승에게 도를 물을 때는 나의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한다.
오늘은 서른 아홉번 째 구절
自從認得曹溪路 (스스로 자, 쫓을 종, 인정할 인, 얻을 득, 마을 조, 시내 계, 길 로)
자종인득조계로 /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了知生死不相干 (마칠 료, 알 지, 날 생, 죽을 사, 아닐 불, 서로 상, 방패 간 )
요지생사불상간 /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드디어 증도가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에 도달했다.
조계의 길은 바로 육조 혜능선사(六祖慧能禅师638~713)를 만나러 간 길이다.
육조혜능이 누구인가?
지금 선종(禅宗)이라 부르는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 종파를 세운 인물이요.
일자무식 가난한 나무꾼 출신에서 일약 선종을 세운 조사(祖师)가 된 불세출의 인물이 아니던가?
혜능은 우연히 듣게 된 금강경의 한 구절, 응무소주이생기심(应无所住而生其心) 즉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는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에 오조홍인(五祖弘忍601~674)을 찾아간 혜능은 그의 문하에서 부처님으로 부터 전해 지는 의발(衣钵 가사와 바루)를 전수 받고 결국 육조(六祖)가 된다.
조계는 바로 육조 혜능이 만년에 머물렀던 조계(漕溪)라는 지역명을 일컫는다.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 종파인 조계종은 바로 육조대사가 거처했던 바로 이 조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계는 선불교의 총본산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대한불교 조계종은 바로 육조 혜능 선사의 선불교의 법맥을 이어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조계사 또한 그런 의미에서 선종 사찰인 셈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면서 당신의 의발 즉 입고 계시던 가사와 공양에 쓰시던 바루를 다음 후계자에게 전수 했다고 한다. 그것이 의발의 시초이다.
수행자에게는 사유 재산이 없다.
바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때문에 바루를 그릇 삼아 걸식을 한다.
그러니 가사 장삼과 바루가 수행자에게 유일한 자산인 것이다.
의발 전수는 스승이 가진 모든 것을 제자에게 전하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그렇게 부처님의 의발은 인도에서 27대 까지 내려 온다.
그후 28대에 이르러 그 유명한 달마대사에게로 전해지게 된다.
달마대사 시기에는 이미 불법은 인도에서 쇠망해졌고 결국 동쪽으로 법을 펼치기 로 결심 한다.
여기서 ‘달마서래의(达摩西来意)’ 라는 화두가 등장하게 된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바로 동쪽에서 다시 불법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 동쪽, 중국의 소림사(少林寺)에서 만난 혜가(慧可 487~593)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선종(禅宗) 의 싹을 심게 되었다.
그래서 선종은 달마대사를 초조(初祖)로 삼아 이조혜가, 삼조승찬, 사조도신, 오조홍인의 전수를 거쳐 육조혜능에게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 혜능에 이르러 선종은 자라나 동쪽에서 완전히 만개하기에 이른다.
혜능이후 수 많은 수행자들이 등장하였고 모두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혜능이후 선불교는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종의 맥은 우리나라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영가스님의 시점으로 돌아가 보면 조계의 길은 영가스님이 육조혜능을 만나러 온 길이다.
영가스님은 본래 혜능선사의 선종계열의 문하가 아니다.
사실 불교에는 많은 종파가 있다.
부처님 법은 하나이지만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각각의 방식에 따라 종파가 나뉘어지게 되었다.
또 종파안에서도 어느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느냐에 따라 문중(门中)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이단 논쟁이 전혀 없다.
정통이란 것이 본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부처님 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가스님은 원래 천태종(天台宗) 계열에서 출가하여 유마경(维摩经)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선종의 현책스님을 만나서 육조혜능에게 가서 깨달음에 대한 인가를 받으라고 권유를 받게 된다.
그렇게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을 만나러 조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영가스님과 육조스님의 첫 만남, 바로 선문답이 시작된다.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에게 절도 하지 않고 육조스님 주위를 세번돌고 떡하고 서 있는다.
그러자 육조스님은 묻는다.
“사문은 누구이길래 이렇게 도도하고 아만이 높은가?”
그러자 영가스님은 답한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은 너무도 빠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육조스님은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득하여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하고 다시 되 묻는다.
이때 영가스님은 곧 바로 답한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 하였습니다.”
육조스님은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말이 맞다.”
<了知生死不相干 / 요지생사불상간>
바로 이때 본래 마음 자리는 생사에 상관이 없다는 것을 영가스님은 깨우친 것이다.
이후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에게 정식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의 절을 올리게 된다.
깨달음의 인가를 주고 받은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아마 전체 증도가 구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본래 나고 죽음이 없는 마음 자리를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감격스러워진다.
<일일 소견>
의발은 무를 증명하기 위한 유가 아닐까? 무는 유를 통해 증명 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202/pimg_778719259458993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