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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 1월23일

오늘의정진: 但自懷中解垢衣 (단자회중해구의) 다만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

- 100일 정진, 29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스물 여덟 번째 구절은

<上士一決一切了, 中下多聞多不信/상사일결일체료, 중하다문다불언)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요달하고, 중하근기는 많이 들을 수록 더욱 믿지 않는다.> 였다.

공자(孔子 B.C 551~479)도 논어(論語) 에서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를 밝힌 적이 있다.


공자가 말한 상근기는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이다.

이는 태어나면서 부터 아는 경지의 사람을 뜻한다. 소위 신동(神童)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어릴때 부터 이미 보통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중근기는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이며, 배워서 아는 경지의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스스로 자신은 생이지지자가 아니고 학이지지자라고 했다.

공자조차도 학이지지의 경지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이상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물론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나온 겸손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하근기는 곤이지지자(困而知之者) 로 곤란함에 부딪혀 어렵사리 경험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알아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마도 이 부류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 같다.

태어나면서 부터 미리 아는 경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자처럼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부류도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낮은 근기는 아예 알려고 조차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현저히 낮은 사람들 부류일 것이다.

그러나 유학의 이러한 분류는 불교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유학이 근기(根機)의 기준을 현생(現生)에 두었다고 한다면 불교는 근기의 기준을 현생과 과거생까지 포함한 기나긴 시간속의 인과(因果)로 보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상근기는 이미 수 없이 많은 윤회의 전생(前生)을 거쳐 쌓아 온 수행의 결과라고 한다. 태자 싯다르타가 한 생에만 국한되어 수행을 쌓아 부처를 이룬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처님 전생담(前生談) <자타카>에는 과거 500생이 넘는 생애 동안 수행과 덕행을 쌓은 일화가 나온다.  부처가 되기 이전에 싯다르타는 과거생에 이미 토끼, 사슴, 코끼리 같은 동물의 생과 수행자, 왕, 상인등의 모습으로 살았던 전생들을 겪어 왔던 것이다.

깨달음이란 단지 한 생애, 한 순간의 정진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상근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과거생 부터 무수히 닦아 온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하근기 부류의 수행자 역시 근기가 낮다고 무시 할 수 없다.

그들 역시도 원을 세우고 수 많은 생을 통해 공덕과 수행을 쌓아왔을 것이다.

상근기든, 중하근기든 모두 결국엔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 만으로도 꼭 기필코 불도를 이룰 것이다.


오늘은 스물 아홉 번째 구절

但自懷中解垢衣 (다만 단, 스스로 자, 품을 회, 풀 해, 때 구, 옷 의  )

단자회중해구의 / 다만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

誰能向外誇精進 (누구 수, 능할 능, 향할 향, 바깥 외, 자랑할 과, 정할 정, 나갈 진  )

수능향외과정진 /누가 능히 밖을 향해 정진하는 것을 자랑 하는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이라 하여 닦을 것도 없다고 했지만 그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닦을 것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옷에 때가 묻으면 입었던 옷을 벗어내고 물로 빨래를 해야 깨끗히 씻어낼 수 있다.

마음의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때 묻은 옷을 벗어 씻어내듯 마음의 때도 씻어내야만 한다.

그런데 마음 닦는 다면서 마음이 아닌 다른 외부를 향한 수행과 정진은 다 헛수고 일 뿐이다.

자신의 마음을 벗어난 외부에서 찾는 것은 정진(精進)이 아니다.

오직 나의 마음 속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영가스님의 경책이다.


<일일 소견>

우리는 이번 생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생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이번 생이 과거 생에서 부터 이어져 왔고, 다음 생에도 이어짐을 잊지 말기를...

본래 오고 감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음을 깨우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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