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학 교양과목 과제 때문에 구입하고 읽은 책.
시간이 지났으니 당시 과제로 제출한 리뷰를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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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서 저자들은 "시선으로서의 역사", "소설이자 역사서"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다" 등의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비전이 훌륭하다고 전부 성공하는 것은 아니듯, 그리고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들이 그러했듯 이 책도 비극적이었던 그들의 절차를 따라가고 있다. "시선으로서의 역사" 자체는 정당하다.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통해 실증주의적, 과학적 사관뿐 아니라 역사가의 해석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카의 사관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이, 끊임없이 사실관계를 입증하려는 노력에 따라 '역사'로서 입증된 사실에 사가 개인의 시선을 덧칠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를 "미화", 정도가 심할 때 "왜곡"이라 표현한다.
대담 형식은 어떤 인물의 사상과 그가 가진 세계관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할 때 유용한 방식이다. 대상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과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주 이용되는 형식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파란만장 코리아 오매불망 대한민국>은 직접적으로 인터뷰가 불가능한 대상에 대해서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상" 대담을 하였기 때문에 대담 형식이 갖는 장점을 스스로 버렸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인터뷰어의 개성인데, 저자가 네 명이나 있지만 작중 인터뷰어의 성격과 성향은 한결같으며 몰개성하다. 김옥균 편에서는 인터뷰 대상자를 잘 파악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지만, 빛났던 장면은 그뿐이다. 역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사벨라 비숍 및 북한학 학자들에 대해서는 마치 팬처럼 막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추임새나 넣는 수준이었고, 그 외에는 오히려 인터뷰이의 입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거나 미화할 뿐이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정립된 이승만은 물론이며, 박정희 편에서 "2011년에는 당신의 정책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옳고 그름의 가치문제는 책에서 내내 주장하고 있는 대로 시선의 문제이니 차차해두더라도, 현대 대한민국의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박정희 정권뿐 아니라 제5공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역임한 김재익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단순히 "모두 박정희의 공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정치적으로 이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개입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게다가 단순한 비판을 하자면, 2012년까지 그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인데 누가 그를 옳았다고 검증했다는 것인가? 이 정도면 미화가 아니라 왜곡의 수준이다.
글머리에서는 저자들의 과거 이력을 들어 책의 균형을 강변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과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지 저자들의 과거 이력이 아니다. 분명 비극적인 이력이나, 그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이 책에서는 논란이 심한 인물들을 미화하는 것에 열중했다. 여러 사료를 참조하고 거기에 소설적 상상력을 덧붙여 인물들의 심정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저자들의 소설적 상상력이고 어디까지가 사료인지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이 책 어디를 찾아봐도 이것을 분명하게 구분지은 곳은 한 곳도 없었고 글머리 뒤에서야 나오는 출처표기조차 "상당 부분을 인용, 재구성하였다", "~등의 자료를 참조하였다", "많은 부분을~" 따위로 두루뭉술하게 되어 있다. 이래서야 김진명의 소설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분명히 밝히지만, 역사학계에는 "교차연구"라는 훌륭한 시스템이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출처표기에 제시된 거의 모든 사료가 특정 정치성향을 지닌 집단의 것이라니,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역사서라 강변하는 책은 정말인지 처음 보았다. "소설이자 역사서"를 지향했다는 말은 부족한 역사 평가 능력 및 진하게 묻어나는 정치적 의도를 변명하는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책이 이룬 성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북한학 학자들을 소개하는 한편 간결한 문체와 탁월한 편집구성력, 적절한 참고 자료와 사진의 삽입으로 디자인적으로 상당히 우수한 성과를 내었고, 주장하는 대로, 일단은 학생들에게 건네주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다. 도서출판 시대정신으로서는 보기 드문 진보적 시도라 할 수 있겠으나, 그것뿐이다. 이미 시장에는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사료도 확실하며, 더 쉽게 읽히는 훌륭한 교양 역사서가 많이 나와 있는데 굳이 이 책을 이유가 뭐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자 했겠지만 결국 그들만을 위한 책이다. 지금까지 도서출판 시대정신이 내놓은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수상한 시기에 이런 책을 읽으면서, 문득 한 가지 학문적 개념이 떠올랐다. 흔히 "과잉금지 법칙", 법학에서는 "비례성의 원칙"이라고 하는 것이다. 행정의 목적과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의 관계를 비교해 보았을 때, 그 수단은 목적을 실현하는 데에 적합하며, 또한 그 수단은 일반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만 침해할 수 있고, 아울러 그 수단의 도입으로 인해 생겨나는 침해가, 의도하는 이익과 효과를 능가해서는 안 된다는 법치국가의 원리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원칙은 역사에서도 준엄하게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