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는 단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부각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적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세기 프랑스 선교사 샤를 딜레는 흥미로운 지적을 하였다. ˝조선에서는 사람들이 대단히 큰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집회는 특히 떠들썩하다. 사교계에서는 보통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특이하게 보이려고 하는 기인이라고 생각되어, 다른 사람으로부터 안 좋게 보인다.˝ 이것은 도덕 지향성에 기초한 ‘말‘의 경연에 대한 묘사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크게 떠들어야 비로소 일이 바로 잡혀진다˝라는 달레의 지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도덕 지향적인 사고의 소산인 것이다. -p87-
한국인의 ‘자기 인식‘이었다. 좋은 것은 항상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보다는 ‘바깥‘을 알아야 사람들이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기보다는 남을 보고 싶어 하는 한국인. 모든 좋은 사례는 외국에서 가져오려는 습성에 젖어든 한국인. 바깥의 틀을 빌려와서 자기를 설명하려는 한국인 등등. 이러한 자기비하, 자기무시로 점철된 비주체적 태도에 대해 일본인 저자는 애정 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 ˝아니, 한국에도 좋은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문화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한국에 눈을 돌려주세요!˝ -p262-
그래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