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공교롭게 전시를 다녀왔다. 역시나 이미지는 피부 아래 잠자는 감각을 깨우고, 잊고 있던 원시성에 닿게 한다. 나는 이미지가 인간 내면에 일으키는 파장에 주목해왔다. 뉴욕에서 미술치료과정을 공부할 때 명화나 일러스트레이션 이미지들이 한 개인의 정체성과 정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증진시키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수많은 명화 포스트 카드를 들고 뉴욕의 대학교들을 전전하며 그들이 해석한 이야기를 모으고, 의미를 추출하는 작업을 했다. 그 때의 작업은 개인 내면의 심층적 의미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측면에 불과했다. 때문에 그밖의 (역사적, 정치적, 미적, 철학적) 다양한 배움의 영역을 통해 그림을 이해하고 배우는 작업은 언제나 목마름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이렇게 목마른 나를 더욱 '자극'하는 책이다. 내가 '자극'이라 굳이 표현한 이유는 한 작가, 때론 그 작가의 일부 작품만을 소개하는데에 책 한권의 품이 드는 경우도 허다한데, 정말 감초같이 필요한 내용들로 작은 지면을 할애해 우리를 작가가 구현한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가끔은 많은 품의 지면이 필요한 예술서가 조금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그림감상을 더 배우고, 공부하고 싶게 자극한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좋아지면 그 사람에 대해 사소한 것도 이것저것 더 알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오르세에서 만난 모네, 니스에서의 마티즈, 뉴욕 모마에서 만난 뭉크와 피카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마주한 '최후의 만찬', 소설로 읽었던 '진주귀걸이 소녀', 박사과정에서 배운 실존주의를 통한 뭉크와 피카소...'
한동안 잊고 있던 머릿 속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책을 읽었다. 워싱턴, 뉴욕, 밀라노, 파리, 생폴드방스, 발리, 몬트리올...생각보다 많은 곳을 다니며, 그 때마다 미술관을 들르고, 뮤지엄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워크숍도 듣고, 심지어 뉴욕의 어느 뮤지엄에서 인턴으로 일도 하고... 지나와 돌아보니 꾸준히 배우려했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나처럼 심리학을 하는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새로운 측면의 이야기와 지식들이 채워지니 그림이 더욱 풍성하고 감미롭게 경험되었다. 어쩌면, 나와 달리 그림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 더욱 그림의 세계를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 자신의 팔레트와 색의 조화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은 노예처럼 자연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과 크게 다르다....나는 자신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 ]
라고 말했을 정도로
색의 시각적, 심리적 감정 효과를 열정적으로 탐구한 화가이다.
p.19 - 고흐
조증(manic)과 우울(depression)과 같은 정신질환(mental-illness), 그리고 창의성(creativity)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언급되어 왔다. 아직까지의 결론은 다양한 정신질환이 창의성을 촉진시킬 수는 있지만 창의적인 사람이 꼭 이러한 정서적 불안정성을 지녀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가 조금 강렬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독특한 형태로 구현되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왔다. '고흐의 편지'(책)를 읽었는데도 그가 얼마나 강렬하게 회복하고 싶고 치유하고자 했는지, 삶을 새롭게 살 수 있는 에너지가 그에게 간절했는지를 잘 찾아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림이 주는 자기 암시를 통한 'empowerment' 의 힘에 대해 더 고찰해 보게 되었다.
[나는 붕괴 그 자체이다.]
중증 장애인이 된 프리다는 패션을 신체적 결점을 보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편
개성과 예술적 재능을 표현하는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P. 29 - 프리다 칼로
패션의 의미를 전환하여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킨 '프리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취약하고 다양한 질환과 장애를 겪는 사람들과 일해 왔음에도 프리다 칼로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어려서 읽은 그림에 관한 책들에서 프리다 칼로의 비극에 집중했던 것 같고, 생과 싸워내야했던 강렬한 전사로 묘사되었다. 객관적인 우리 삶의 이야기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거나 다른 보이지 않았던 파트를 보게 되는 것처럼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하다. 프리다의 독특한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효과적으로 숨기고 머리와 어깨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중 목적을 수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프리다 칼로를 새롭게 보게 했다. 회복의 이미지가 예술로 승화된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Arts Therapy다.
'장애는 프리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었다'...라고 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실은 우리 누구나 어느 정도의 취약성과 어려움, 충돌과 장애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림 속 생의 이야기와 회복의 상징물들이 '숨쉴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인간 내면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하게 표현한 원시 미술은서구 전통미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술 영역을 개척하던 예술가들에게
강한 영감을 줬다.
....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면 더 강렬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모델리아니에게
예술의 목표란 순수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극한으로 몰고 가는 그녀의 집념과 열정 그 강한 자부심은
수정처럼 투명한 절대순수에 도달하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p. 125 - 모딜리아니
현실만으로 우리 자신을 해석하기엔 우리는 늘 목마르다. 영적인, 정서적인 에너지, 신체감각이 경험하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감각은 우리가 더욱 '인간'임을 일깨워준다. 그 순수함과 집념, 열정을 간결한 선,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다고 한다. 형태를 이용하면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배운다. 작가가 무엇을 진정으로 표현하려하는지 알게 되니 그 단순하고 강렬한 형태를 눈으로 다시금 매만져 보게 된다. 그리고 그림을 더 깊은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림감상 #미술치료 #Bookers #부커스 #그림감상도공부가필요합니다 #조슈아미술심리상담스튜디오 #미술 #그림힐링 #분당미술치료 #북커스 #신간 #그림감상도공부가 필요합니다#그림감상 #그림공부#명화#명화감상#전시회#사비나미술관 #서평단모집 #서평이벤트 #서평단 ##서평쓰기 #서평단리뷰 #서평단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