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게리첸은 미래지향에서 "스파이 코스트"를 출간하면서 작가의 저력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작가입니다. 마티니 클럽으로 명명된 CIA 출신 어르신들의 모임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짜릿한 즐거움을 주었는데, 이 양반들이 그대로 등장해 반가웠습니다.
큰 틀에서 줄거리는 장르소설에서 익숙한 전개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실종 사고가 발생합니다. 단순 실종인지 범죄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땅떵이가 워낙 넓은 미국이라 가능한 설정입니다. 우리나라였으면 CCTV로 금방 해결될 일이겠지만 어메리카는 산골짝이나 호수에 사람이 실종되면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몸으로 때우는 탐문, 탐방 등 인간들의 전문성에 기반한 조사가 필수입니다. 그렇기에 경험이 풍부한 마티니 클럽의 활약이 가능합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 서장 대행 조 티보듀와 압도적 경험과 연륜으로 한 발짝 앞서 나가며 그녀를 돕는 마티니 클럽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최고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역시나 결말에서 드러나는 범인을 맞추는 데는 대 실패했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서술 방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챕터마다 서술자가 바뀌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넓은 관점에서 사건이나 등장인물을 조망하게 돕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용에 집중하기 어렵고 헷갈리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막 설명해도 될 일을 다양한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보통은 모험입니다만, 워낙 베테랑 작가라 전혀 어색함 없이 잘 해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마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고 이는 소설의 내용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이 요원한 상태에서 문제를 파헤칠수록 과거의 사건이 덩굴처럼 줄줄이 드러나는데 이 때문에 사건이 복잡해지고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욱 커집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조차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기 어려워 혼란해 합니다. 이 상황에서 복잡한 설정을 복잡하게 풀어내면서도 지루함 없이 끝까지 싸잡아 끌고 나가는 저자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나이도 많으신데 뚝심 있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의도겠습니다만, "여름 손님들"에 와서는 마티니 클럽의 활약이 조금 덜 합니다. 실수도 있고, 신체적 한계로 인한 어려움도 묘사됩니다. 오히려 성장한 조 티보듀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커졌습니다. 무게 중심이 조 티보듀에게 많이 옮겨 간 느낌입니다. 균형이 잘 잡혀서 좋기도 하고 1편의 주인공들의 활약이 줄어서 아쉽기도 한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동일한 등장인물들의 활약과 유기적인 관계 변화가 보기 좋게 연결되어 시리즈를 즐기는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름 손님들"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망각 속에 사라져 그런 걸 수도 있겠습니다. 뭐든 더 재미있어졌다는 것은 좋은 거니까요. 도시와 시골 마을의 격차가 큰 미국식 문화와 상황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매력적입니다. 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테스 게리첸의 신간 "여름 손님들"을 추천드립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여름철 별미 같은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