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한다.
나의 불평이나 우울, 침울 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한다.
오래 전 나의 청춘이 지나갔음이 고마울지경이다.
돈이 부족하다.
김애란의 책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돈이 부족해서,
내 청춘의 빈곤쯤은 선택한 빈곤마냥
추억스러워 다행이다 싶게 만든다.
그 절정이 마지막 이야기, <서른>이다.
불쌍하고 측은하고 왜 그랬냐고 타박하고 싶지만,
감히 엄두가 안나 입을 닫아걸테다.
지금까지 읽은 김애란의 책 중 가장 구슬프고 먹먹하며,
이 시대의 청춘들이 안타까워 감히 그들을 비난하는
따위의 말들은 입에 꺼낼 수 조차 없게 한다.
이 책을 처음 잡을 때부터
난 비행운을 구름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행운 앞에 아닐비 자를 넣은 비 행운이겠거니 했다.
돈이 부족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렇듯 많듯이
돈이 풍족한 청춘들의 이야기도 또한 많지 않을까?
현대의 문제점은 부족이 아니라 풍족에서 온다고 했는데,
김애란이 펼쳐내는 돈이 풍족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싶은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하나하나의 단편으로만 읽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모두가 연관되어짐을 알 수 있었다.
김애란의 모든 책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단편이 모아져서 우리가 되는 것 같다.
매력을 넘어서면 마력이 된다했던가, 마력적인 김애란의 글이, 책이 너무 좋다.
* "뭐 그럴 것까지야."
*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에 바다와 하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면세점이 있었다.
* 고국에서는 한국어를 '하는' 혹은 한국어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외국서는 '한국어를 가지고 다니는' 기분이다.
* 그러곤 /1700년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글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에 생기는 온갖 기대와 암시, 긴장과 비관에 대해서라면 저도 꽤 아는데, 자식노릇, 애인노릇 등 온갖 '도리'들을 미뤄오다 잃게 된 관계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데, 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 혼자 나이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