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에 이어 2권을 읽다 보니 저자에 대해 좀은 꼰대스러운 느낌이 든다.
가문 운운하고,
술이 빠지지 않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본인의 문학만 중요하게 여기는 시인에 대한 미화까지...
그 시절에는 그랬지 라는 말로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썩 내키지는 않네.
미투가 있기 전에 나온 책이어선가, 고은 시인도 있다.
김용택 시인을 읽을 차례에 화장실을 다녀온 후 읽기를 계속했는데,
어째 안도현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두 장을 넘기는거라.
안도현 시인을 어지간히 좋아하시나 본대
그래도 김용택 시인의 자리에 그의 이야기는 두 장이 넘어가도록 언급이 없고
안도현 시인에 대해 이렇게 지나치게 할애하는 것은 잘못이지 않을까 쯧쯧거리며 혀를 찰 즈음,
아뿔사! 화장실 다녀온 사이 책장이 김용택 시인을 지나 안도현 시인의 장으로 넘어가버린 것을 안거라.
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꼭 이렇게 되겠구나를 체험하니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했다.
어리석어 모르면 매사가 이렇겠다는 자각이 크게 온다.
1권에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최고로 쳤는데
2권에서는 김용택 시인의 <눈 오는 집의 하루>를 꼽고 싶다.
* <균열> -서정춘
내 오십 사발의 물사발에
날이 갈수록 균열이 심하다
쩍쩍 줄금이 난 데를 불안한 듯
가느다란 실핏줄이 종횡무진 짜고 있다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물사발의 균열이 모질제도 아름답다
<봄, 파르티잔> -서정춘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만일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이선관
여보야
이불 같이 덮자
춥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따뜻한 솜이불처럼
왔으면 좋겠다
<눈 오는 집의 하루> -김용택
아침밥 먹고
또 밥 먹는다
문 열고 마루에 나가
숟가락 들고 서서
눈 위에 눈이 오는 눈을 보다가
방에 들어와
또
밥 먹는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햇살에게>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꽃>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축우지변> -이상국
힘이 든다
소를 몰고 밭을 갈기란
비탈밭 중간 대목 쯤 이르러
다리를 벌리고 오줌을 솰솰 싸면서
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면
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
그런 날 밤
콩섞인 여물을 주고 곤히 자는 밖에서
아무개야 아무개야 불러 나가보니
그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