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에 나오는 <"이성의 광기"를 "영성"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라는 말로써 나는 이 길고 긴 책의 독후감을 대신하려 한다.
이성의 광기(여기서는 살인이겠지) 자체를 이해할 수 없고, 어차피 벌어진 광기라면 영성으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어 천만다행인 것으로!
수 없이 많은 길고 긴 대화들에서 진저리가 났고, 라스콜니코프의 정신상태를 따라잡다가 내 정신상태까지 상당히 고되었던지라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드디어 끝났다 싶어 후련하기까지 했다.
에초에 범인을 밝혀두고 시작하는 책이다 보니 라스콜니코프의 마지막 자백까지의 심리적인 여정이 흥미롭기는 했으며,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소냐에 대한 확고한 믿음(거의 성녀화 되어가는 소냐의 존재로 보면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소냐에 대한 신뢰는 당연한 것이었을지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반면 뜬금없는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자살은 조금 엉뚱스러웠다.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 받으나 사형 집행 바로 직전 황제의 칙령에 의해 사형집행이 중지되고 강제노동형으로 감형된다는 도스도예프스키의 일화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죄라고? 무슨 죄? 저 추잡하고 해로운 이(head lice)를, 가난한 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 죄악은 용서받을 텐데, 그것이 죄라고?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죄를 씻을 생각도 없어. 그런데 왜 다들 사방에서 나에게 '죄야, 죄!' 하며 손가락질을 하느냔 말이야. 다만 내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옹졸했다는 것쯤은 이제 똑똑히 알겠고, 그래서 이제 저 불필요한 수치를 감내하러 갈 결심을 한 거야! 그저 나의 천함과 무능함 때문에 이런 결심을 한 것이지. (p.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