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면의 차이, 내면의 공통성>

‘데드미트 패러독스’는 한국인 작가가 일본에서 인정받은 희귀한 이력을 가진 만화이다. 그냥 알음알음 알려진 작품도 아니고 일본의 3대 만화 출판사라는 고단샤 공모전에서 당당히 대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만화가 한국에 출간된 건 마치 금의환향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 만화는 장편만화도 아니고 수 백화는 족히 넘어가는 웹툰도 아니다. 딱 한 권으로 이루어지는 짧은 이야기이다. 소재도 좀비라는 재미를 보장하는, 가볍게 읽기 좋은 만화이다. 그렇지만 가벼운 분량과 반비례하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차별, 그것도 인간이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좀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좀비물의 그것과는 다르다. 책의 배경인 올랜드 제국은 사후 30일 이내에 갑자기 시체가 부활하는 원인 불명의 사태를 좀비라 칭한다. 이들은 이성이 있고 과거의 기억을 제대로 갖고 있다. 사람과 다른 점은 몸, 정확히는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 장기가 죽은 상태란 것이다. 따라서 좀비는 부패를 막기 위해 방부제를 지속적으로 발라야 한다. 또한 극단적인 스트레스로 이성을 잃고 날뛰며 사람을 무는 ‘카데바’라는 증상이 종종 발현한다. 이런 차이로 좀비는 일반 사람들에게 대놓고 차별받는다.
이야기는 변호사면서 좀비의 변호도 맡는 골드라는 청년과 그의 동생이자 좀비 실버, 그리고 이들 사이에 등장한 아르테미아 가문의 후손이자 좀비 릴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릴리와 그녀의 사망보험금 수령이라는 문제로 소송을 진행하는 보험회사 빅베일의 충돌이 만화의 중심 사건이다. 주인공 셋은 이 싸움에서 릴리를 위한 진정한 승리를 위해 행동한다. 하지만 빅베일 사의 더러운 공작과 소송 중 일어난 릴리의 카데바 증상으로 결국 주인공이 패배로 귀결된다. 하지만 직후 소송에서 드러나는 골드의 태연함에 상대방은 놀라고 마는데. 골드가 생각한 승리, 그걸 위한 포석, 최후의 승부처인 소송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속내, 터지는 반전은 이 만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사실 이야기의 내용만큼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곳곳에 집어넣은 아이러니이다. 제목의 일부이자 주인공 골드와 실버, 그리고 릴리가 서로 속내를 터놓고 사건이 시작되는 바 이름인 데드미트(deadmeat)는 분명 좀비와 대응되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활기가 넘치는 바의 모습과 사람답게 살려하는 좀비의 모습은 분명 아이러니이다. 또한 에덴동산에서 모티브를 따 왔을 제국의 수도 에덴은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런던처럼 값싼 좀비를 인간 이하로 부려먹는, 에덴과는 거리가 먼 도시이다. 이외에도 그림 구석구석 이러한 아이러니와 상징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끄집어내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좀비는 외견상 사람과 전혀 달라서 멸시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외견상, 혹은 외부로 드러나는 특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차별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 속 좀비의 내면이 사람과 다르지 않았듯, 현실의 차별받는 것들에 외면이 아닌 내면의 공통성을 찾아보면 어떨까. 책 ‘데드미트 패러독스’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서평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