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문제에 가려진 아이들의 위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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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아이들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친지도 몇 년, 이제 우리는 이 병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팬데믹 초창기의 혼란함은 가라앉았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은 아니어도 초기의 제재 조치를 맞닥뜨리던 상황과 비교하면 천국과 같다. 지역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의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식당은 코로나19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하다. 이를 보면 적어도 외형상 코로나19 사태는 진정 국면에 돌입한 듯 보인다. 설령 그것이 냉정히 말해 코로나19를 마주하는 사람들이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고, 그래서 엔대믹 상황으로 치달아서 코로나19를 퇴치하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지만.
하지만 안정된 상황은 겉모습일 뿐, 더 이상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멀리 보면 서서히 복구되는 듯 보이는 사회도, 가까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이번 서평 대상의 책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들'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상처가 그렇다.
산적한 문제가 쌓여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문제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특히 경제는 연일 신문지상에, 뉴스에, 그리고 유튜브에 화제가 되고 있어서 모를 수 없다. 식량 위기,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국제정세의 악화(특히 미중 갈등,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로 인한 경제 위기는 우리에게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데 사회 문제, 그것도 아이들 이야기는 매스컴의 주목을 유독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상황에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어디 있겠냐마는, 아이들의 문제도 중요하다는 걸 어른들은 잘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책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들'은 현시점에서 꼭 회자되어야 할 책이다.
아이들도 아프다
"... 그런데 이 코로나 대감염 속에서도 어른들은 온통 부동산, 코인, 주식 등 눈앞의 돈, 죽기 전에 다 쓰지 못할 돈 이야기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승전 공부로 끝나는 꼰대 세대인 부모와의 대화는 답답하기 그지없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밝게 이야기해 주는 어른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제1장. 코로나 상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37p
책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들'은 저자 '김현수'의 작품이다. 저자는 이미 책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을 쓴 경력이 있다. 그만큼 코로나19 사태에 아이들의 문제를 신경 쓴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통상적으로 아이의 중요성은 다른 가치에 밀리는 법이니까. 경제나 사회나 정치나, 기타 어른들의 사정 따위로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이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진단했다.
반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초기의 그 아수라장인 상태에서 아이들을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정치권은 연일 정부의 방역에 대한 잘잘못 공방으로 추태를 보였다. 경제는 특히 식당 등 외식업계의 곡소리로 가득 찼다. 다른 일자리도 곡소리 한 번 나지 않은 곳이 없었겠지만 외식업계의 타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식당 주인들은 앞다투어 큰 소리를 냈다. 곡소리만큼이나 큰 소리로 언론, 정치권, 심지어 일반 대중들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였다. 더불어 일반 대중들은 티브이만 틀면 나오는 사망자 몇 명, 확진자 몇 명이라는 숫자를 들으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언론에서 짤막하게 다루는 내용으로는 어린이의 상처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못 들었다고 지른 비명 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몰랐다고 해서 상처 난 아이들의 마음이 멀쩡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강 문제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동체 파괴, 교육 격차,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중독, 외로움, 고독, 부모와의 갈등, 교육 외 사회생활 교육 미흡, 기타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문제들을 아이들은 혼자서 견디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의 상처는 어른들이 쉽게 무시한다는 데 있다. 어른들은, 특히 부모는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떠올리지 않는 듯하다. 그저 생각하는 거라고는 애들 성적, 학습, 스마트폰 좀 그만 봐, 커서 뭐가 될래 등이다. 이는 부모가 코로나19 이전, 아이들을 대하고 시키던 루틴을 고수할 생각밖에 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우리 다 알지 않는가. 코로나19는 과거와 미래를 단절시켰다. 과거를 돌리려고 무진 애를 쓰는 건 무의미하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말과 행동, 상처에 눈과 귀를 집중시킬 때가 되었다.
어른들은 모른다
"교사의 교육, 부모의 인생 조언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아이들이 말합니다. 지금의 현실이 올바르지 않지만 적응하고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편법들을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 논리, 적응 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산을 넘어 역사의 현장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에필로그, 279p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바로 성적이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대사건 속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이와 어른의 관계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성적, 책, 공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 다만 아이에게 '이것만' 말한다는 게 문제다. 심지어 어른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변화하지도 않았고 그저 악화되기만 했다. 아니면 악화가 아니라 그냥 민낯이 드러난 것뿐이거나. 이제 부모와 아이의 소통은 성적, 공부, 책 말고는 없다. 부정하거나 체념하는 부모들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 외에 어른들은 말을 잘하지 않는다. 소통 능력이 빵점이다.
어른들이 변화된 현실을 부정하고 적응하기 어려워할 무렵, 아이들은 바뀌었다. 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공부가 아니라 다른 진로, 다른 중요한 가치관이 있음을 깨달았다. 변하지 못한 건 아이를 예전처럼 대하는 어른이다.
어른은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고 항변한다.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이미 중독 수준으로 말을 해도 들어먹지를 않는다. 학교 등교를 위해 일찍 일어나던 아이들이 코로나19로 등교를 못 하게 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어나는 시간은 제멋대로에, 일어나도 게으르게 행동한다. 원격 수업은 그저 틀어 놓기만 하고 듣지 않는다. 아예 모니터를 꺼버리고 다른 일을 하는 아이도 있다.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 말 한마디 안 한 어른은 없고, 이 말 들어보지 못한 아이도 없다. 이 문장은 대단히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 바로 둘 세대 간의 몰이해, 불통이다. 간극을 좁힐 수가 없다. 그 결과 어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아이들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형식적인 위로나 해 주면 다행이다. 대뜸 의지가 부족하다느니 게을러 빠졌다느니 하면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게 부지기수다. 여기에는 아이가 뭐가 힘이 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어른의 고약한 편견이 자리한다.
물론 어른들도 힘들다. 꼬박꼬박 일하고 월급 받고 애들 가르치고 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그렇지만 아이들도 아프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프다. 그걸 이해해야 진정한 부모가 된다.
"보살핌과 이해, 격려가 이 시대의 어린이, 청소년에게 필요합니다. 물론 이 과정을 잘 견디고 함께해주는 부모님들도 격려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격려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잘 크고 있다는 느낌, 어려운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성취하고 있다는 느낌이 마음 한가운데 안정적으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대합니다."
제4장. 코로나 상처 치유를 위해 교사, 부모가 실천해야 할 열 가지, 166p
단절된 아이들, 고립되다
"아이들의 걱정은 친구 관계,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이었습니다. 청소년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의 진짜 격정은 관계의 결핍,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4장. 코로나 상처 치유를 위해 교사, 부모가 실천해야 할 열 가지, 143p
아이들에게 있어 학교 생활은 학습을 위한 공간 이상이다. 온갖 공동체 활동을 진행하는 삶의 체험의 장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2년 정도가 지난 지금, 학교는 일견 보기에 정상화되어가는 듯하다. 코로나19 시대의 단축수업은 이제 끝났다. 이제 예전처럼 학교 다니고 공부하면 된다. 이제 해결. 끝.
끝은 무슨. 부모는 현재의 학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학교는 이제 예전 그 학교가 아니다. 장소 문제가 아니다. 문화의 문제다. 2년의 시간은 아이들의 또래 문화를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학생회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동아리 활동, 수학여행, 기타 집단 활동의 문화가 사라진 공간, 학교는 여느 독서실과 다를 바 없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다른 건 선생님이 있다는 것?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것?
이제 아이들은 학교 생활의 근본적인 의미를 고민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 교육이 주입식 교육과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장으로 변질된 지는 한참 되었다. 비단 코로나19가 퍼졌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간신히 학교가 유지된 건 사회생활을 배울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서로 자신만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화합하는 공간. 마음껏 행동하는 것을 막는 규칙, 규율 따위를 지키면서 자연히 배우는 준법정신 함양의 장. 적어도 일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데 학교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협동 활동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19 때문에 집단 활동이 일정 부분 제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걸 빼면 사실 학교의 존재 의미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묻습니다. 친구가 그렇게 중요하고, 친구들 사이의 존재감이 그렇게 의미가 큰가 하고요. 친구를 왜 꼭 만나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걱정에 공감하기 힘들고 더 많이 다투기 시작했던 것이죠."
제4장. 코로나 상처 치유를 위해 교사, 부모가 해야 할 열 가지, 143p
"이 외로움이 코로나 시기에 더욱 깊어져서 많은 아동, 청소년들은 이를 이해받고, 치유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 세대들에게는 외로움이 중요한 감정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고, 해야 할 일은 많고, 함께할 형제가 있었던 부모 세대는 외로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5장. 아동 청소년을 위한 건강한 회복을 위한 제언, 224p
어른들은 아이들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 나이대에 맞게 또래 집단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서로 존중하며 자신감을 쌓아나간다. 외로움을 덜어주는 기능도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아이에 대한 부모의 이해 수준은 상당히 낮다. 반면 또래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 일단 비슷한 문제의식, 감정,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로움 해결책으로 부모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겠다.(물론 개중에 부모와 있을 때 안정적이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코로나19가 아이들이 간신히 조절하고 있던 외로움을 폭발시켰다. 이제 아이들에게 외로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오래된 문제, 해결의 시작은 이해
코로나19 시대, 아이들의 상처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방법은 명확하다. 이 책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들'은 바로 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이 서평에서 굳이 지면을 할애하여 방법을 나열하지는 않겠다.(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다만 여기서는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지금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필자가 지금까지 이 서평에서 말한 '문제'라는 것은 과연 누구의 기준일까? 우리가 말하는 문제의 기준, 혹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어른들이다. 가령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있다. 요즘 부모들은 스마트기기(예컨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의 중독 문제를 크게 우려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스마트폰을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현재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하는 데 있어 중요 수단이 되는 건 스마트폰이다. 특히 SNS가 그 역할을 한다. 부모 세대는 머리로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거부감이 들 행위가, 사실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또래 집단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행위였을 수도 있다. 다만 이해하지 못했기에, 혹은 안 했기에 알 수 없었을 뿐이다.
필자가 이해의 문제를 말하는 건 이것 때문이다. 어른이 생각하는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괜히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스마트폰을 없애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또래 집단에 튕겨나갈 것이다. 외로움은 늘어날 것이고.. 가정은 불화로 제 기능을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른의 잣대로 문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말자. 아이를 이해하고 그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설령 그게 매일 정 붙이며 사는 가족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대화는 공부하라는 소리밖에 해 본 적 없는 부모라면 사실 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제 아이를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력자인 어른이 부모가 꼭 필요하다. 희망을 갖자. 뭐, 외계인과 통신하는 것처럼 허무맹랑한 일은 아니니까.
추천 독자
이 책은 코로나로 인한 아동의 피해를 고찰하고 원인 및 해결방안에 대하여 썼다. 따라서 1차적인 예상 독자는 아이들과 특히 같이 살고 있는 부모들이다. 덧붙여 부모는 아닐지라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사 등의 사람들도 꼭 읽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같이 있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과외 교사, 학원 관계자들에게 추천한다.
코로나19는 어른들에게도 버티기 힘든 재난이었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어른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피해만을 생각할 때, 아이들은 홀로 묵묵히 견디고 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필자가 원하는 건 어른들 전부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아프다. 잊지 말자. 아이들도 아프다.
이 책은 출판사 '해냄'으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쓴 서평입니다. 개인의 주관을 견지하여 작성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