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파국은 막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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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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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정 이유
기후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인간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필자는 기후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매년 기록이 경신되는 기온 수치 때문은 아니다. 피부로 느껴지는 기후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는 탓이다. 이 느낌을 필자만 받지는 않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칠 정도이니까.
다만 필자가 이 책 ‘식량위기 대한민국’을 서평 대상으로 선정한 건 상술한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건 사람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기후 파국으로 향하는 현시점에서 보이는 위선적인 인간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 도덕적인 행동을 촉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보여주기 식 환경 보호를 하는 사람들. 마치 패션처럼 ‘나는 환경 보호를 위해 힘쓰는 도덕적인 인간이에요!’라는 자기 만족감과 도덕적 우월함, 선민의식을 다른 이들에게 내뿜는 자들. 기업의 ‘그린 워싱’에 당하면서도, 웃돈을 얹어가며 자신이 환경 보호에 있어서는 적어도 ‘타인’과 다르다고 착각하는 자들. 문제는 이런 위선이 환경에는 딱히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죄책감을 덜고 허영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는 최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된 상황 이해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무지와 위선으로 점철된 저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싶었다. 따라서 그 이해의 출발점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추천 독자
책은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 그리고 대한민국의 환경과 식량 위기 상황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추가로 제목의 경우 한국의 식량과 관련된 내용만 줄줄 나올 것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책은 전 세계의 환경오염, 기후 파국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환경 관련 정책과 운동이 어떻게 변화, 발전하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환경에 대한 책들은 정말 많다. 장담컨대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순간에도 환경 관련 책이 출판을 기다리고 있거나 쓰이고 있을 것이다. 이유는 환경 보호가 유행처럼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제대로 된 환경 관련 책들을 고르기 어려워졌다. 작가와 출판사는 한 철 장사를 하듯 급하게 책을 찍어낸다(마치 공장 같다). 독자들은(책과 담을 쌓던 사람도 있으리라) 뭔가 있어 보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책만을 산다. 예쁜 표지에 그럴듯한 말들을 주르륵 적어둔 책들 말이다.
하지만 책 ‘식량위기 대한민국’은 유행 때문에 나온 책이 아니다. 10여 년 간 농학자로 살아왔고, 유엔에서 기후 관련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전문성에 있어서는 견줄만한 다른 책이 거의 없으리라. 그렇다고 전문적인 내용 만을 적어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것도 아니다. 저자는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도식과 그래프, 그림들을 추가했다. 그렇기에 대중들이 이 책을 선택했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이 책은 독자에게 있어 최고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본론
1. 책 소개
우리가 바둑돌을 놓을 수 있다고 프로 기사가 아니듯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고 해서 세상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 1장 식량난 임박, 지구에 도대체 무슨 일이? 60page
책 ‘식량위기 대한민국’은 기후변화의 원인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다룬다. 특히 이 책은 식량 문제를 기본적인 주제로 선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책 내용은 식량 만을 전문으로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 세계의 환경 정책의 변화를 한눈에 훑을 수 있다. 어째서 지구 온난화가 발생하는지, 온실가스가 어디서 어떻게 배출되고 있는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어떤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등 다양한 주제들이 책 안에 녹아 있다.
책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다양한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들을 쉽게 풀어 설명하여 일반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둘째, 독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래프, 표, 그림 등을 책 곳곳에 삽입하였다. 셋째, 단정적인 어투가 아닌, 문제에 대해 의문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저자 ‘남재작’ 작가가 이 책 ‘식량위기 대한민국’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낸 기후위기로 인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인류는 이 문제를 그래도 적응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아직’은 말이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는다면 소용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들을 아예 틀어막고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인류의 행동 여하에 따라 아직 좀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쁘겠다) 희망은 있다. 따라서 우리들, 인류 전부 파국을 맞이하지 않도록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저자가 원하는 건 바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문제를 이해하고 당장에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다. 그 외에 기후 변화에 대처할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2. 기후 파국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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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논할 때 인구의 문제는 그냥 상수로 둔다. 사실 이 문제를 드러내는 순간 타노스의 해결책이 등장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의 기후 위기에 인구 증가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 2장 우리가 만들어 온 기후 위기의 발자취 67page
환경 문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책의 내용을 나열하기보다는 이 책의 독자로서 기후파국이 도대체 왜 생기며, 우리는 이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보도록 한다.
사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자체는 간단하다. 바로 인간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생태계의 균형을 망가뜨릴 정도로 늘어난 인구수에 그 문제가 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인구의 증가세는 생태계가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문제는 산업혁명의 시작과 뒤 이은 하버-보슈 공법에 의한 질소 비료 생산에 있다. 값싼 질소 비료의 공급은 폭증하는 인구수를 감당할 수 있게 했다. 그렇다 사람이 늘었다. 사람이.
비료가 무슨 죄가 있을까. 비료는 사람을 살린 죄밖에 없었다. 비료가 없었다면 인류의 많은 수가 기근으로 죽어갔을 것이다. 맬서스 트랩이 바로 이 상황을 예언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화학비료의 등장으로 냉정하게 말해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았다. 그 사람들은 사람을 낳고, 그들은 또 사람을 낳고 낳았다. 그렇게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순환 사이클에서 벗어났다. 인간은 이 굴레에 벗어나면서 동시에 이 사이클을 파괴했다.
인구의 증가는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값싼 노동력의 공급으로 산업혁명은 그 기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자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삶의 질은 상승했다. 과거의 산업혁명이 없었다면 현재의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삶의 질이 상승하는 순간에 생태계는 박살 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의 시작은 곧 온실 가스 배출량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후 지구의 기온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이제 기후 위기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가 물에 잠기고 있다. 태평양의 군소 섬나라들은 해안선의 상승으로 국토가 수몰될 위기에 빠졌다. 남극과 북극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빙하가 깨지고 녹고 없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 위기는 농산물의 생산을 저해하여 저개발 국가의 국민들이 당장에 아사의 위협에 빠지게 되었다.(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 아니라 인도 등 농산물 수출국가들의 수출 제한 및 금지가 실시된 탓이다. 기후 위기로 인해 농산물의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전 지구적인 위기의 원인이 인간, 그것도 인구수 때문이라는 사실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빠르다. 그러나 환경을 위해 인간의 수를 줄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애초에 환경오염과 기후파국을 막으려는 건 결국 인간의 생존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수의 문제가 원인이라면,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또한 인간에게 있다.
3. 미래는 비극으로 끝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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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를 인류가 극복해야 할 위기라고 하면서도 탄소중립은 도달하기 너무 어려운 목표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10년 전 <기후대란>을 쓸 때 나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아 기쁘고도 슬펐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희망을 발견한다. RE100과 에너지 전환처럼 부분적인 성공도 있겠지만 인구 증가에 의한 생물자원 고갈과 생물 다양성의 위기 , 그리고 이어질 식량 위기처럼 전체적으로는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크다.
...(중략)...
하지만 우리가 발 디딘 땅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모든 잡음은 단지 새로운 성공을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우리가 명확하게 인식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할 근거는 없다.
- 5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회는 아직 있다 326page
앞서 환경오염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다만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잘 아는 환경 정책들이 나오게 되었다. 환경 정책은 에너지 원천을 전환하는 것부터, 폐기물 감축 및 재활용, 환경 친화적인 제품 사용 등을 꼽아 볼 수 있다. 모두 지금까지 정부와 환경 단체 그리고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만으로는 기후파국을 막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환경을 위해 뭔가를 ‘더’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번에도 사람이다. 책에서 나오듯 세계 기구에서조차 환경 문제에 대한 분석과 그 대책의 논의는 외교, 정치적인 입김이 과학자들의 말보다 더 센 것이 현실이다. 보고서 조문 하나하나 뜯고 고치는 이들은 과학자들이 아니다. 이 역할을 수행하는 건 외교관들이고 정치인들이다. 답답하게도 이들의 개입은 환경 문제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최대한 늦춰왔다. 결국 2021년 IPCC 제6차 보고서에서 이를 인정하게 되었다. IPCC의 첫 보고서가 나온 것이 1990년이다. 외교관과 정치인이 시간을 끌려는 목적이었다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기후파국을 막을 수도 있었던 시간을 몇십 년이나 허비했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목적에서 이들은 시간을 지연시킨 것인가?
이는 순전히 인간의 이해득실의 문제 탓이다. 사람 중에는 환경오염으로 먹고사는 자들이 많다.(그들이 굳이 환경오염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이들은 힘이 세다. 지금도 그렇다. 이득을 얻는 이들은 최대한 자신들에게 손해가 가지 않도록 다방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회피를 위해 이들이 수행한 프로파간다는 지금도 회자될 만큼 계획적이고 치밀했다.(이에 대한 내용을 더 알고 싶다면 책 '가짜 뉴스의 시대'를 읽어보자.)
그렇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외교관, 정치인들조차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이익을 보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해득실을 떠나서 이제 기후파국이 인류 그 자체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아직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상황으로 나태하게 있기에는 피해가 너무 커져버렸다. 이미 약한 고리인 저개발국가에서는 기근과 아사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앞다투어 환경 정책과 제도, 사업 따위를 쏟아내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순간에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더 늦기 전에 시작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듯하다.
정부와 기업의 노력은 그렇다 치고, 이제 환경오염에 책임이 있는 개인으로서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 그런데 과거의 프로파간다 혹은 기업 또는 서업체의 그린 워싱, 상술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자의 경우 아예 기후 위기나 원인, 그리고 그 결과를 허상으로 여기고 환경 보전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후자는 무지하나 허영과 위선, 선민사상에 찌들어 환경 보호를 마치 패션 유행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사람들에 대해 지적하고 넘어갈 생각이다. 무지와 선민사상, 허영과 위선에 빠진 사람들. 이들은 환경에 무관심한 사람만큼 환경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들은 환경 보호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와 몰이해를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선민사상을 장착하고 타인에게 제 사상을 강요한다. 타인은 그들에 휩쓸려 환경 보호에 대한 허영심을 가진 ‘사람 1’로 재탄생하거나, 혹은 환경 보호라는 가치에 거리를 두게 된다. 둘 다 별로 좋은 결과는 아니다. 둘 모두 환경 보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하였듯이 이 문제의 해결은 우선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허영과 위선에 찬 이런 인간들은 환경 보호를 주장하며 타인을 저열하다고 몰아붙이지만 실제로 제 자신은 환경에 무지하다. 예컨대 조금만 생각해보면 환경 보호와는 영 거리가 먼 기업의 ‘그린워싱’에 속아 넘어간다. 또는 환경을 위한답시고 채식주의에 경도되거나 비건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비건, 채식주의자들은 종종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과 선민사상을 여과 없이 타인에게 쏟아내는 저급한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경에 도움이 되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실제로 채식주의자, 비건은 딱히 환경 친화적이지 않다. 이들이 먹는 것은 결국 농사를 통해 공급되는데 거의 전부가 화학 비료를 이용하여 생산한다. 이는 토양 오염과 하천과 해양의 부영양화에 기여한다. 화학 비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농사는 그 자체로 토양에서 ‘아산화질소’라는 온실 가스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 이 가스는 이산화탄소와 비교해 300배 정도 온실 효과가 더 강하다. 그렇기에 농사는 전체 온실 가스 배출량 중 1/4를 차지한다. 고로 채식을 하는 순간순간 환경은 파괴된다.(애초에 먹을 걸로 친환경을 논하는 건 웃긴 일이다. 가장 친환경인 건 아예 식량 생산을 줄이고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다.)
이렇듯 제대로 된 문제 이해 없이 도덕적 감수성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환경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기후파국은 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가 기후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기후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극은 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그렇다.’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
서평을 마무리하며 책을 다시금 들춰보았다. 책의 어느 한 군데도 저자의 생각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지구는 전쟁으로 기상이변으로 난장판이 되고 있는 것을 저자도 알았을 것이다. 식량 위기와 그로 인한 식량 수출국들의 수출 제한과 또 이를 넘겨받듯 이어지는 물가 상승의 후폭풍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순간 뉴스에서 물가가 기록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저자도 필자와 같은 뉴스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필자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노력을 회의적으로 봤다. 정치인들은 기후가 변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개개인들은 환경 의제에 무관심하거나, 가짜 뉴스에 경도되어 음모론을 펼치거나, 혹은 겉으로만 환경 보호를 외치면서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있거나 했다. 정말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디 없는 것일까? 풀 쪼가리만 먹으면서 환경 보호했다고 자기만족하는 위선자들 말고, 빌 게이츠 이야기를 하면서 다 음모론이라는 사람 말고, 정말로 환경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은 어디 없는가.
그런데 필자는 이 책 ‘식량위기 대한민국’을 읽고 희망을 보았다. 저자는 책에서 비관적인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그래도 이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고 또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필자는 저자와 다른 이유로 희망을 품었다. 저자처럼 우리나라의 환경을 위해, 또 책에 나오는 다른 학자와 환경 운동가들이 있었다. 필자가 몰랐던 것이지 사회 곳곳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희망을 가졌다. 이제 그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또 같이 행동하는 것을 통해 필자도 환경 보호에 좀 힘을 써볼 작정이다. 이것이 저자가 원한 것이라면 저자의 이 책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고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책을 읽을 많은 이들에게 필자를 포함해 우리는 환경 보호를 위한 동지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이 글을 마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쓴 서평으로 개인적인 주관적 견해가 들어갔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