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5․18은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전두환 등 국가반란세력과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고 '빨갱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에 의한 무장폭동'이라고 믿는 무지한 세력이 자꾸 깊은 상처를 후벼파는 한 관용과 화해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1980년 5월 비극의 현장 광주. 소년이 온다. 소년은 왜, 무엇 때문에 오는 걸까.
열여섯 살로 중학교 3학년생인 동호, 동호네 문간방에서 누나랑 자취를 하는 동호 친구 정대, 동호가 정대를 찾으러 갔다가 도청 상무관에서 만난 수피아여고 3학년생인 은숙, 양장점 미싱사인 선주, 대학생 진수, 그리고 막내인 동호를 잃은 동호 엄마가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제1장 '어린 새'에서 계엄군에 의해 쓰러진 시신들을 관리하면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만나게 되고, 제2장 '검은 숨'에서는 죽은 정대의 혼이 관찰자가 되어 계엄군들에 의해 시신들이 얼마나 무참하게 다루어지는지 지켜본다. 제3장에서 제6장까지는 살아남은 자들이 살았던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내고 있다. 제3장 '일곱개의 빰'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의 삶, 제4장 '쇠와 피'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진수의 삶, 제5장 '밤의 눈동자'는 증언 녹취를 요청받고 갈등하는 선주의 삶, 그리고 제6장 '꽃 핀 쪽으로'는 아들을 잃고 살아온 동호 엄마의 넋두리가 눈물 머금은 꽃잎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잊어서는 안된다고, 잊지 말아달라고.
1. 폭력과 상처
소년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날'의 상처들은 무겁고 무섭고, 아프고 슬프다. 무장한 군대를 앞세운 공권력이 외부의 적이 아닌 국가가 존재하는 원천이자 보호대상인 시민을 향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는 듯이." <소년이 온다> 17쪽
소년의 눈에 비춰진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화려한 휴가'를 계획하고 수행한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은 '광주'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범죄를 덮으려 하지만 진실은 언제 그 자리에서 역사를 지켜보고 있다. 광주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부산이나 마산이 끔찍한 만행이 저절러진 역사의 공간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 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소년이 온다> 206쪽
2. 용서와 화해
아직도 뜨겁게 살아있는 고통의 실체인 거대한 악을 두고서 정치적인 수사가 아닌 한, 함부로 '용서'를 말할 수 없다. 아직도 그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태연히 증언한다. 당신이 경험한 상처라 해도 그렇게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
'맞는 놈은 다리 뻗고 자고,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잔다' 말은 때린 놈들의 기만적인 자기 정당화다. 맞아본 사람은 안다. 마음이 편해서가 아니라 잊어야만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상처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 45쪽
"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소년이 온다> 183쪽
잔인하고 깊은 상처는 외면한다고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공감하고 함께 치유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반복되면서 다시 우리들에게 번뜩이는 칼을 들이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