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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kim7676의 서재
화담
yjkim7676  2024/12/09 12:15
  • 화담
  • 경번
  • 15,300원 (10%850)
  • 2024-11-09
  • : 278
고통을 연민 없이 마주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 고통, 타인의 고통, 아직 오지 않은 고통까지 모두 다 끌어안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고통을 연민하는 것은 인간이 떨쳐낼 수 없는 본능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누군가 아프다고 말하면, 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상상했다. 그 상상 속에서 나도 아파하며,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그 위로는 늘 부족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남았다.

고통은 하나의 경험으로 지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풀어야 할 문제처럼 다가왔다. 나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고, 아픔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통은 점점 단단해지고, 무거워졌다. 그것은 연민 때문이었다. 연민하는 만큼 고통은 나를 떠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연민을 끊어내야 할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연민을 끊어낸다면 인간다움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았다.

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고통을 연민하기에 고통스러워지지만, 그 연민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연민이 누군가의 고통에 나를 다가서게 하고, 그 고통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흔들리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바람에 흔들리는 목련처럼, 타오르는 불꽃처럼, 파도에 부서지는 겨울 바다처럼.

“모양은 다르겠지만 각자에게 부여된 외로움의 몫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거잖아.”
-<<화담>>, 경번, 다시문학

경번 작가의 『화담』은 겨울 바다를 닮았다. 차갑고 쓸쓸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칼바람이 부는 해안가에 홀로 선 기분이 들었다. 그 풍경은 냉혹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 또한 선명했다. 차갑기만 한 줄 알았던 바다 위로 숨결 같은 물결이 번져가고 있었다.

작품 속 한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그저 상처라고만 생각했던 추억이 열나흘 동안 나를 먹여 살리며 숨 쉬게 했다면, 자넨 혹시 어떤 마음인지 알려나?”

그 물음에 나는 오래 머물렀다. 아팠던 기억이 결국 나를 살아가게 했던 원동력이었음을, 내가 지우려 했던 상처가 사실은 삶의 일부였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화담』은 상처를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상처는 고통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흔적이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쓸쓸함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고요한 바다의 파도가 절대 멈추지 않듯, 상처 속에서도 삶은 끝내 흐른다는 것. 『화담』은 그런 진실을 조용히, 그러나 선명히 전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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