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혹시 보셨나요? <돌봄 선언>을 읽어 보니 이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복지 제도가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모순적인 상황. 과연 이러한 상황을 영화로만, 또는 영국의 상황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에도 돌봄 부재 상황이 있었습니다. 서초구 고독사 사건, 용현 화재 사건 등등... 마음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왜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발생한 걸까요?
<돌봄 선언>에서는 이윤과 성장, 국제경쟁을 중요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인해 무관심의 결과 이 상황을 초래하였다고 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용어를 빌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관심이 구조적 수준의 평범함에 젖어 들어 무관심이 지배하는, 즉 돌봄의 부재로 귀결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그리하여 “한마디로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그리고 돌봄의 결여를 바로 잡기 위해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보편적 돌봄을 주장합니다. 돌봄이 삶의 모든 수준에서, 가정·친족·공동체·국가·지구 전체 등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되고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어요. 코로나 팬더믹으로 돌봄의 위기가 여실히 드러났는데 돌봄을 중심에 세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겠어요. 이제는 연대해야 할 때겠죠. 그동안 사회복지사로서 돌봄을 개인적 측면에서 또, 대인 돌봄으로만 생각했는데 <돌봄 선언>으로 거시적인 시각으로 돌봄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앞으로는 더 이상 돌봄의 부재 사건 소식이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