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레네
두뽀사리 2011/10/09 13:55
두뽀사리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내 이름은 이레네
- 이레네 구트 옵다이크
- 11,700원 (10%↓650)
- 2011-10-10
- : 95
내 이름은 이레네
이레네 구트 옵다이크 지음
연암서가
홀로코스트, 레지스탕스, 나치친위대, 쉰들러 리스트, 안네의 일기, 아우슈비츠, 게토, 게슈타포, 유대인 등등 세계2차대전과 관계되는 수많은 단어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떤 말로 이 참상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있을까?
열일곱 소녀에게 전쟁은 참으로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폭격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하면서, 이레네는 전장에 내몰려졌다. 독일군이든, 러시아군이든, 이레네에게는 모두 적일 뿐이고, 간간히 생명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유대인에 대한 학대와 약탈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에게 반하는 일이었다.
그저, 유대인들을 위해 음식을 조금 제공할 뿐이라지만, 그 미미한 일 조차 그 당시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목숨을 담보로 내놓지 않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큰 일이었지만, 이 작은 아가씨는 욤감하게 그 일을 수행해 나갔다.
폴란드인 헬렌의 남편인 헨리 바인바움은 로키타 소령의 사택에 집사로 일하면서 가능한 정보를 유대인에게 빼돌리고 있었고, 이레네는 가능한한 유대인들을 이레네가 일하는 장교 식당의 세탁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모둔 수단을 동원해서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이레네의 선행으로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은
먼저, 야노프카 숲에 거처를 마련한 사람들로는
헤르만 보리스와 그의 부인 미리암
헤르쉴 모리스와 그의 부인 폴라가 있었댜. 이들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이레네의 도움을 받아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자유를 찾아 불모지와 다름없는 숲 속으로 나왔다.
토마스 바우어와 그의 부인 클라라
라자르 할러와 이다 부부
팡카 질버만
모제스 슈타이거
이렇게 여섯 명은 뤼게머 소령의 새 사택 지하에 이레네가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로키타 소령의 유대인 말살 계획 실현 직전에 구조되었다. 2차 적으로
헨리 바인바움과
요셉 바이스
마리안 빌너
알렉스 로젠이 헨리와 함께 이들 무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최후에, 헤르만 모리스와 미리암이 몸 상태가 너무 위독하므로 위험을 무릎쓰고 뤼게머 서령의 지하실에 숨어 들었다.
이레네는 목숨은 물론이고 자존심과 종교까지도 포기하면서, 유대인들을 도왔다. 이는 '열방의 의인'따위의 칭호나, 훗날 영화를 위함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 시절, 그 시점에 직접 서 보지 않고는 장담하며 거론할 수는 없다.
"나라면 그러지 않겠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물며 나치의 수하에서, 간접적으로라도 그들의 비인간적인 말살행위를 동조했다고 해도,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내가 직접 그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어찌 타인을 비난할 수 있으랴?
따라서, 이레네의 행동을 격하시킬 자격 또한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이레네의 선행은 오랫동안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나고도 조국 폴란드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가족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러시아군에게 붙잡히는 수모까지도 감당해야 했으니까......
다만, 자신의 구해준 유대인 친구들과 만나 캠프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레지스탕스로 활동할 때 만난 첫사랑, 야넥도 결혼 전날에 안타깝게 잃고, 결국 UN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와 생활하게 되면서 만난 윌리엄 옵다이크와 결혼하여, 딸 야니나와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그래도 훗날 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디행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슬픈 이야기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쉰들러 이야기와
우리들 가슴을 울리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
그리고 이제 여기에 [내 이름은 이레네]를 함께 올리고 싶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