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매라 불리는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는 어디서 얻어 입었는지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다녔어.
옷은 남루했지만 살갗이 빨개지도록 씻고 다녀
늘 깨끗했고 눈이 초롱초롱 빛났지.- P2
그 마을에 손끝이 야문 아낙네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 아낙을 바늘부인이라고 불렀어.
바늘부인은 바느질 솜씨가 좋아서
멋을 아는 부인네들은 모두 바늘부인에게 옷을 지어 입었지.
바늘부인은 솜씨만큼 성깔도 까다로워서
바느질을 배우려고 왔던 사람들이 얼마 견디지 못했어.- P5
어느 날 바늘부인이 집 앞을 기웃거리는 쪽매를 보았어.
"네 이름이 무어냐?"
"이름은 따로 없고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다녀서
사람들이 쪽매라고 불러요."
"어디 사는데?"
"그냥 아무 데서나 살아요.
이집 저집 허드렛일을 해 주면서요."- P6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 살아라.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면서."
그래서 쪽매는 바늘부인과 살게 되었지.
바늘부인은 북덕무명으로 치마저고리를 지어 쪽매에게 입혔어.
거친 무명으로 지은 옷이었지만
쪽매에게는 생전 처음 입어 보는 새 옷이었어.- P7
쪽매는 바늘부인 곁에서
인두가 알맞게 달도록 화롯불도 피우고,
옷감을 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바래기도 하고,
걷어다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도 했지.
바늘부인은 쉴 새 없이 쪽매에게 일을 시켰어.
쪽매는 일하는 틈틈이
바늘부인이 바늘땀 놀리는 것을 꼼꼼히 새겼어.- P9
쪽매는 바늘부인 집에 있는 온갖 천들이 좋았어.
모본단이며 양단, 뉴똥 같은 비단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항라며 갑사, 삼베나 세모시의 그 얇고 고운 천에
온통 넋을 빼앗기고는 했지.
언제부터인가 쪽매는 바느질하고 남은 천을 모으기 시작했어.
버려진 현 고리를 하나 주워다
해진 데는 헝겊으로 꿰매고 풀어진 테를 다시 엮어
그 안에 조각 천들을 모았지.- P10
철이 바뀌고 쪽매는 많이 자랐어.
바늘부인이 지어준 치마저고리는
아무리 곱게 입어도 키를 따라 자라지는 않았어.
치마는 껑충 올라가고 저고리는 뎅겅 짧아졌지.- P13
쪽매는 모아 두었던 천들을 꺼냈어.
짧아진 소매 끝에 빨간색 천을 이어 댔지.
그런데 빨간색 천으로는 한쪽 소매밖에 댈 수가 없었어.
쪽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른 한쪽에 보라색과 초록색을 이어 댔어.
짝짝이에 넓이도 달랐지만 끝동을 댄 것처럼 예뻤지.- P14
치마는 한 뼘은 길어야 한 해를 더 입을 것 같았어.
쪽매는 그만한 천들을 골라 보았어.
검정색, 하늘색,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 주황색,
보라색, 자주색, 초록색, 빨간색......
천들을 모두 펼쳐 놓고 보니 색들의 잔치 같았어.
쪽매는 크기와 질감이 다른 천들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지.
그리고 색색으로 이어 붙인 천을 치맛단에 대었어.
‘끝동을 댄 치마를 입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나는 원래 쪽매니까 흉이 되진 않을 거고.‘- P16
촉매는 심부름도 많이 다녔어.
바늘부인이 지은 옷을 가져다주거나
새로 지을 옷감을 받아 오는 일이었지.
쪽매가 자주 가는 곳 중에 명주부인 집이 있었어.
그 부인은 길쌈 솜씨가 뛰어나 명주부인이라고 불렸어.
명주부인 집까지는 꽤나 멀었어.
한 시간은 걸리는 길이었지만 쪽매는 이 심부름 길을 좋아했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정다운 눈길을 보냈지.
지나치는 집이며, 나무며, 꽃이며, 강아지 한 마리까지도 모두 좋았어.- P19
명주부인 집 대문을 들어서면 더욱 행복했지.
명주부인 집은 좋은 재목으로 잘 지은
겹도리 기와집이었어.
마당도 넓고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우물도 있었어.
문살 모양도 아주 아름다웠지.
추녀의 곡선도 날렵하고 댓돌도 좋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정원에 있는 나무들이 아름다웠지.
쪽매는 홀린 듯 집을 보고는 했어.- P21
명주부인은 쪽매가 심부름을 오면 무언가 먹여 보내고는 했는데,
어느 날은 인절미 한 접시를 내왔어.
"어제가 내 생일이었단다.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왔구나. 어서 먹어라."쪽매는 얼른 떡을 먹지 못했어.
"왜? 떡을 안 좋아하니? 맛있단다."
"그런 게 아니라, 죄송하지만 이 떡을 싸 가지고 가면 안 될까요?"
"누구 줄 사람이 있나 보구나.
따로 좀 싸 줄 테니 이건 너 먹어라."
쪽매는 명주부인이 준 떡을 들고 어딘가로 달려갔어.- P22
쪽매가 간 곳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어.
그곳의 아이들은 입성이 남루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안돼 보였지.
그 애들이 꼭 자기 같아 쪽매는 자주 그 길로 다니고는 했어.
쪽매는 마을로 가서 아이들에게 떡을 나눠 주었어.
그러다 그곳 장거리에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를 보았어.
하루 종일 한데 있는 할머니는 몹시 추워 보였어.
‘어깨에 두를 덮개가 하나 있으면 덜 추울 텐데…………?
집에 돌아와서도 쪽매는 여러 날 그 할머니를 생각했어.- P25
어느 날 쪽매는 명주부인 집에 가서 물었어.
"저, 혹시 제게 시키실 일이 없으세요?"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무슨 일이든지 시키시면 하겠어요."
"그래라. 할 일이야 많지.
집 안팎을 둘러보고 네가 찾아서 하거라."
쪽매는 마루와 문틀을 닦고 물독도 채워 놓았어.
고무신도 새것처럼 닦아 마루 끝에 얌전히 두었지.
"자, 이만큼 했으니 품삯을 줘야지. 뭘로 주랴?"
명주부인의 말을 듣고 쪽매의 얼굴이 환해졌어.
"북덕솜을 좀 주시면 좋겠습니다.
안 입으시는 헌 옷이나 헌 천하고요."
쪽매는 명주부인에게서 얻은 것들을 보물인 양 안고 돌아왔어.- P26
쪽매는 밤이 되면 조각 천을 이었어.
조각 천 아래 솜을 얇게 펴 놓고현 옷으로 안감을 대었지.
그리고 솜이 자리 잡게 누빔질을 했어.
만든 것을 어깨에 둘러 보니 포근하고 따뜻했어.- P28
쪽매는 그렇게 만든 어깨 덮개를 푸성귀 파는 할머니에게 주었어.
늘 무릎이 시린 신기료장수에게는 무릎 덮개를 만들어 주고아이들에게는 조끼를 만들어다 입혔어.
쪽매는 틈 날 때마다 명주부인 집에 가서 시키거나 말거나 일을 찾아 했어.
명주부인은 그러는 쪽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주었지.- P30
쪽매는 가끔 주머니도 만들었어.
쪽매야 가진 게 없으니 주머니가 필요치 않았지만그래도 고운 주머니를 하나 치마 속에 차고 다니면왠지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
작은 주머니에 색실로 곱게 수를 놓고 매듭도 만들어 달았지.
여름 천으로는 조각보를 만들었어.
하얗게 바랜 세모시 사이에 치자빛 생모시 조각을 넣으면아주 운치가 있었어.
바늘부인이 시키는 일은 갈수록 많아졌지만쪽매는 불평 하나 없이 쉬지 않고 일을 했어.
그리고 잠시라도 틈이 나면 조각 천으로 온갖 것들을 만들었어.
명주부인은 쪽매가 만드는 그런 조각붙이들을 아주 좋아했지.- P33
그러던 어느 날, 심부름을 간 길에쪽매는 명주부인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어.
"좋은 옷감을 좀 넉넉히 주실 수 있으신지요?"
"무엇을 만들려고? 감이 얼마나 필요한데?"
명주부인은 말이 없는 쪽매에게 옷감을 고르게 했어.
쪽매는 은은한 치자빛 비단 한 필을 겁 없이 집어 들었어.
그 비단에 한 땀 한 땀 곱게 바느질을 했지.
깃은 작은 조각 천으로 수놓듯 이어 붙이고단은 고운 문양으로 선을 둘렀지.
오래 걸려 은은하고 우아한 두루마기를 만든 거야.
쪽매는 그 두루마기를 명주부인에게 주었어.
그날이 명주부인의 생일이었거든.
"아니, 이 두루마기를 네가 지었다고?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로구나."명주부인은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쪽매를 보았어.- P34
국내는 병주부인의 아름다운 집을 볼 때마다이 짐을 그려 남길 수는 없을까 생각했어.
칠 따라 바뀌는 집의 아름다움을 조각 천으로 그려 내고 싶었다고되게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천을 모으고머릿속으로는 그림을 그렸어.
머릿속의 그림이 완성되자 쪽매는 바느질을 시작했어.
바늘부인이 시키는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 하는 일이라아주 조금씩밖에 못했지만 꾸준히 조각 천을 이어 갔어.
많은 날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밥 먹는 시간을 아꼈지.
그러면서 쪽매의 몸도 점점 쇠약해졌어.- P37
한 달이 가고 두 해가 가고 시간이 많이 흘렀어.
명주부인은 점점 쪽매를 보기 어려워졌어.
오래 기다렸지만 쪽매는 오지 않았지.
명주부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바늘부인을 찾아갔어.
"그 애는 여기 없습니다.
반장님이 돼 바늘귀도 꿸 수 없어서 내보냈어요."
바늘부인의 말이 바늘 끝이 되어 명주부인의 가슴을 찔렀어.- P38
명주부인은 쪽매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
‘내가 진작 그 아이를 거두었어야 했는데...
친척 하나 없는 쪽매가 아픈 몸으로 어딘가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니자식 하나를 잃은 듯 가슴이 아팠어.
"누가 쪽매라는 아이를 못 보았나요?
앞을 잘 못 보는 아이인데……………."
보는 사람들마다 쪽매에 대해 묻고 다녔지.
명주부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을까,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사는 아이가 명주부인에게 말했어.
"우리 마을 산지기 할아버지 집에 앞을 잘 못 보는 누나가 있대요."
명주부인은 아이가 말한 집으로 달려갔어.
그곳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쪽매가 있었지.- P41
명주부인은 쪽매를 데리고 왔어.
잘 먹이고 쉬게 하자 기운도 차리고 눈도 차츰 나아졌지.
어느 날 명주부인은 촉매를 어떤 방으로 데려갔어.
그 방에는 이제까지 쪽매가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쪽매붙이들이 모두 있었어.
"아니, 이것들이 어떻게 여기 있지요?"
"네가 이것을 나누어 준 사람들한테 열 배의 값을 치르고 모았단다.
그냥 입고 쓰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이어서………….
이런 생각과 솜씨를 가진 사람이 어디 흔하겠니? 너는 참 귀한 사람이다.
천이야 여기 많으니 이제 네가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봐라."- P42
그날부터 쪽매는 변변찮고 구색이 안 맞는 천으로 무엇을 만드는 대신아름다움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만들 수가 있었지.
무엇보다 쪽매가 정성을 들인 일은전에 하다 만 명주부인 집의 풍경을 그리는 일이었어.
몇 해를 걸려 쪽매가 만들어 낸 것은거의 한 벽에 차는 커다란 이불이었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지?"
"저는 이 댁에 드나들면서 감히 잠깐 동안제가 이 댁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집을 제 손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쪽매는 명주부인 집에서 무엇을 훔치기라도 한 양 머리를 숙였어.
"그래, 이 세상 것들은 모두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지.
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집의 주인이었구나.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너에게 고마워할 게다."- P45
쪽매가 만든 이불에는 날렵하나 경박하지 않은 기와집과잘 가꾸어진 정원, 정감 어린 우물과길쌈을 하는 명주부인의 단아한 모습이 있었지.
그것은 바느질로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었어.
쪽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어.-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