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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은우네 서재

어머니가 야간학교에 가면 레비가 살림을 했다.- P66
어머니가 아버지의 눈과 귀 역할을 했으니까.- P67
모자에 대한 나의 애착은 「빌리 진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P68
가능성과 함정이 잔뜩 있는 일종의 모노폴리 보드판- P69
오랜 세월 우린 게리를 벗어날 실력이 되는지 궁금해 하면서 시카고에 달려갔고, 과연 그랬다.- P70
우리가 그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P70
오디션은 익숙하지 않았다.- P71
전에 공연해본 적 없는 것처럼 공연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었다.- P72
우리가 부른 마지막 곡은 《후스 러빙 유》였다..- P73
CHAPTER

TWO- P75
약속의 땅- P75
모타운 오디션에 통과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기뻐서 날뛰었다.- P77
베리 고디(모타운 레코드사 설립자)가 우리를 앉혀놓고, 함께 역사를 쓸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P77
"나는 너희를 세계 최고로 만들어서 너희가 역사책에 언급되게 할거야."- P77
연속해서 세 번을.- P78
부모님이 게리의 집을 정리하고 캘리포니아에서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하기까지 1년 반 동안 다이애나는 우리가 잘 지내도록 도왔다.- P78
나와 형들에게 정말 격렬한 나날이었다.- P79
아찔한 시즬이었다- P79
위대한 쇼맨은 모든 이를 감동시킨다.- P80
그래서 모타운은 아이들을 홍보한다면, 그저 노래와 춤을 잘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아이들이어야 된다고- P80
수전 드 파세Suzanne de Passe- P82
신곡 《아이 원트 유 백》- P83
수많은 모타운 시대의 풋 세션의 하나- P84
코퍼레이션- P85
나와 형들에게 모타운 레코드 녹음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P86
《ABC》- P87
세 번째 싱글 《더 러브 유 세이브》- P87
《아이 윌 비 데어》- P87
그 시절 모타운의 《코퍼레이션》이 우리 음악을 프로듀싱 하고 다듬었다.- P88
자유를 주라고- P89
1971년 4월호 롤링스톤(Rolling Stone) 잡지에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 사진이 등장했다.- P90
다이애나- P91
우리에게 맞는 선곡이 진짜 큰 난관이었다.- P93
우리보다 좋은 출발을 한 그룹이 없었다는 말을 듣는다. 누구도.- P94
활발한 곡은 내가, 발라드는 저메인이 부르는 게 애초 계획이었다. 하지만 열일곱 살인 저메인의 목소리가 더 성숙하긴 해도, 발라드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다. - P95
대대적인 《잭슨 5》 투어는 음반들이 성공한 직후 시작- P96
기분전환- P97
가정교사 로즈 파인- P98
우리는 일곱 난장이들 같았다. 각자 다르고 개성이 강했던 것- P99
저메인-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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