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면서 단 초콜릿 맛
chakanbyeol 2025/12/2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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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극의 희극
- 이정원
- 16,650원 (10%↓
920) - 2025-12-20
: 500
책의 내용을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사랑의 하트를 소괄호에, 금이 간 집 모양을 중괄호에, 8분 음표를 대괄호에 넣은 디자인을 보고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러블리한 핑크색 바탕에 의미를 추측해 보게 하는 디자인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제목 『상극의 희극』.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표지다. '궁합은 상극, 인생은 희극'이라는 부제도 눈에 들어온다.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살아보니 상극이었지만 돌아보니 인생은 희극이었다는 뜻일까?
뒤표지에는 편집자의 신인 작가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이 사람이 바로 내가 발굴해서 첫 책을 내준 사람이야,' 하고 엄청 자랑하고 있다. 읽고 난 독자들이 그럴만했다고 동의할 거라는 확신에 차 있다.
패기, 기세, 리듬
한수희 작가의 추천사에 잘 쓴 에세이에는 '패기와 기세, 리듬'이 있는데 이 책이 그러하다고 하니 읽기도 전에 기대감이 생겼다. 에세이 읽기를 좋아하거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패기와 기세, 리듬'이 어떻게 글 속에 녹아있는지 보려고 더 꼼꼼히 읽게 될 것이다.
신인 작가에게 반한 사심이 드러난 기획자의 코멘트 부분 역시 작가의 필력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칭찬하는 건가 싶어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빨리 읽어보고 싶을 만큼 작가의 글이 궁금해졌다. 동시에 기획자를 반하게 할만한 필력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런 편집자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위트로 빛나는 통찰
기획자의 극찬대로 작가의 글은 흡입력이 있다. 책의 반 이상을 쉬지 않고 읽었다. 위트로 빛나는 통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책이 맞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남자를 사랑한 죄'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작가 고유의 글맛으로 진하면서 달기도 한 초콜릿을 먹은 느낌이 들게 한다. 대놓고 울고 웃기지는 않아서 웃음과 눈물을 살짝만 머금고 읽게 된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마당극에 첫 출연한 무명배우가 잔뼈 굵은 선배들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한 느낌이다.
[정반대로 생긴 사람을 만나면 비로소 나의 모양을 알게 된다.]
작가 소개에서 만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와서 따라도 써보고 무슨 뜻일까 추측해보면서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책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신은, 가장 최적화된 나의 모양을 만들 수 있도록 내 옆에 정반대로 생긴 사람을 두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풀어낸 '정반대로 생긴 사람'과의 에피소드들은 독자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10년 차 이상의 부부들에게는 많은 공감을 살 내용이다.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 이제 중요해진 것은 후행학습, 즉 복습이었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가려고, 남들만큼이라도 가려고 일단 뛰던 그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으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작가의 모습을 책 속에서 보았다. 그랬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깨닫는 것들... 그 의미를 찾은 작가의 이야기다.
[마무리를 해낸 사람만이 시작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2025년이 며칠 안 남은 오늘, 나는 이 문장을 내 문장으로 가져왔다. 늘 시작은 잘 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던 나라서 끌리는 문장이었다. 올해를 닫는 마음이 이 문장과 함께라서 마무리를 잘 하는 기분이 든다.
한 해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읽어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작가의 통찰에 기대어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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