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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바라지만 세상에는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삶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불확실함이죠. 

지금 이 순간과 둘 사이에 만들어진 편함을 즐길 뿐이다.우리는 서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말로 떠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만일 수 있다.모든 것은 속임수일 수 있으며, 그래서 세상에는 그렇게 많은 환멸이 존재하는 것이다. 

"행복은 환상이라는 음악에 맞추어 가장 오래 춤춘다" 

 "병을 치유하는 약은 아무나 감당 할 수 없는 독이 될 수도 있다"--융 

"세상사의 감독은 인간을 이미 오래전부터  공포 영화의 엑스트라로 만들고 았어요.알다시피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일에 익숙해집니다.그런 식으로 공포 영화는 인간 안에 자리 잡고,마침내 이것이 정상적인 일이 되어 버리고 말죠.그러나 더욱 심각한 일은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인간은 악몽을 현실로 여기는 잠자는 사람에 비유 될 수 있습니다.남이 깨우는 것을 그 자신이 못하게 가로 막으며 계속 잠만 자는 사람 말입니다.왜냐하면  이미 오랫동안 그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영혼이 없는 조작자에게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추종자가 없는 지도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지배할 백성이 없는 지배자도 없는 법입니다' ---page231  <얀과 마누엘의 대화중 얀이 한 말중에 

인정이 많고 개방적이며  믿음을 주는 가정 훌륭한 대화 상대자  

 

정상을 다른 말로 하면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의 이익이라고 할 수 있을 테죠. 

우울과 사색을 분간 할 줄 모르는 사람 

사람들은 사랑 할 수 없게 되면  최소한  지배를 하려고 하지 

소비는 바닷물과 같습니다.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심해지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책도 없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을 모든 일의 척도로 삼는 사람들을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끊임없이 곱씹고, 빨대로 빨아 먹듯이  그 생각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은  결코 자기 나름대로의 정신과 영혼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물론 책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하지만 책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되면 방향 감각을 잃게 되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다. 책으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고 격려를 받아도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인간 본성의 특이한 면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그들은 인간이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하면  굴종에 익숙해 질 뿐만 아니라, 그런 생활을 좋아하게 되어오히려 자유를 쟁취하려는 시도에 대항에 싸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삶은 자기의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이 맞추어야 하는 사회적 기능으로 정해진다.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 한 가지는  모두 같아야 한다.모두 겁쟁이어야  한다.

인간은 세계의 질서를 위해 달리는 자동차에 필요한 휘발유이다. 그 자동차에 필요한 기름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향해 치닫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가련한 욕심이다. 나는 휘발유도 기름도 아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다. 이 세상과 세상의 한 없는 비애를 잊을 마큼 내 삶의 기쁨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신비한 순간이 필요하다.   

영혼을 탁 풀어 놓으면  무한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일이 바로 당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한다. 아무도 그런 시간을 마련해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그 시간을 가져야 한다.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삶이라는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테이블 뒤에 서서 비아성적인 사람들이 펼치는 게임을 관망한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게임이 너무 위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베팅하지도 않으면서 안전만 바란다.  그렇게 영원히 인생으 증인일 뿐인 그들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연기하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기쁨과 괴로움을 관망하면서, 그들이 기쁨을 시샘하고 , 자신들이 괴로움을 덜 당했다는 것을 기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각으로만 살아가면서  내적으로 고착된 삶의 관음증 환자가 된다.  그들이 삶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스스로를 삶  앞에서 몰아내 버리고 억압한다.   기쁨을 피해가는 만큼    고통도 달 겪는다는   생각으로   그들은 현명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하지만 그들에게는  늙어서도 오로지  삶을 관망한  것밖에  남지 않고,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삶 자체가  기억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들이 현명했던 것이 아니라  겁쟁이였음을, 삶에 투철했던 사람들이 진정 현명했음을   뒤늦게나마  야렴풋이  깨닫는다.(또한  세상에는  안전 무사함은 없고  , 단지 그들이 잊고 있었던  어마어마한 두려움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이 노력한다면  언젠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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