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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 오늘의 거짓말
  • 정이현
  • 10,800원 (10%600)
  • 2007-07-19
  • : 3,654

정이현의 소설 속 그녀들은 재기발랄하고 영악하고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위악까지 떠는 전략을 구사 할 줄 아는 자본의 시대에 매우 적합한 인물들이다.전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그녀들은 매우 충실하게 전략적이었으며 <달콤한 나의 도시>은수는 위악을 떠는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여린맘을 태연히  감출 수 없는 순진 무구함도 간혹 내비쳤었다.<오늘의 거짓말>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자신들이 사는 체제를  완전 흡수 할 수 없지만 그 나름에서 위악과 적당한 연기로 비빔밥 버무리듯 잘 살던 예전의 그녀들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나이를 먹은 그녀들이  모든게 헛되고 핫되도다를  문신처럼 새긴 듯 체념의 정서가 깔려있다.체제를 전복하거나 정체성을 찾겠답시고 일상을  뒤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세계나 환경을 마냥 긍정하지도 않는다. 

허위와 자기기만임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인간이란 존재의 숙명성을 너무 일찍 간파한 [비밀과외]의  너,애타고 안달나게 만드는 이기적인 의사 애인의 알리바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음모의 공모자가 되는 임상병리사-이 사건을 전환으로 아마도 그녀는 애인과의 관계에서 수직적 위계의 꼭대기 쯤에 위치하게 될지어다.위치이동이 없더라도 그녀는 이제  환상이 거세된채로 애인의 범속함을 마주하게 된다.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나 안정된 직업이 아니라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문화적 취향으로 세련되게 썰을 푸는 그 모습에 반했다지만  의사의 배경이 분명한 프리미엄으로 그녀에게 알게 모르게 작동했을 거라 짐작한다.온화해 보이는 남편의 성품은 기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로부터 비롯됨을 간파하지만  사랑이 뭐 별다르리라는 착각은 스물 다섯 이전에나 하는 거라며 지금의 잔잔한 호수같은 사랑을 긍정하는 섹스리스부부,.설령 그것이 인공낙원이라 하더라도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 까지는 아니라며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저마다 자위한다. 

안온한 중산층의 삶의 홈을 따라 미끄러지듯 별 탈 없이 살던 그녀들에게 예기치 않은 일상의 균열은  잠시 휘청거리게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일 없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개중에는 불완전 마침으로 끝을 맺지도 하고(위험한 독신녀,오늘의 거짓말)  튿어진 솔기를 매끄러운 봉합으로 박음질 하는가 하면(어금니,어두워지기전에) 사랑의 숭고와 비루를 동시에 깨달으며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열정이나 낭만이 우습다는 걸 체득한 그녀들은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라 공감은 가면서도 당위로서 있어야 할 혹은 우리가 희망하고 기대하는 캐릭터를 만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존재함으로 인식하게 되는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로 인해 이런 존재를 그려 볼 수 있는 그런 기대나 꿈을 정이현의 소설에서는 기대 할 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도시속 불빛만큼이나 수많은 욕망들이  뒤엉키는 도시적 삶과 그 안에  파편화 되어 있는 개별성을 정밀하게 소묘하는 그녀의 소설은 처음엔 참신하고 발칙해서 재밌게 집어 들 수 있었는데 오늘의 거짓말은 그닥 와닿거나 울림을  주지는 않는다.[위험한 독신녀],[삼풍백화점],[어두워지기전에]는 좋았지만 처음에 나오는 단편 [타인의 고독]은  플롯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진부한 전개와 소재는   독신자들의 아파트 생활 보고서도 아니고 꽤나 심드렁한 반응을 이끌게 했다. 

그외 다른 단편들은 스타일에 끼워맞춘듯 거창한 초반과  무리하게 무난한 결론이 형식과 내용 모두 건질 것이 없는 실망스런 수준의 단편이었다..특히 [빛의제국]과 [오늘의 거짓말]은 읽고나서 감각을 흔들거나 이성을 살짝이라도 터치하는 아무런 감흥을 받을 수 없었다.[그 남자의 리허설]은 의도는 알겠으나(주체가 되지 못한 주변인의 삶은 좀비와 같으며 재능과 시간의 낭비를 부패와 연결 시키려 어느 날 갑자기 '그 남자'에게 하룻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썩은 내가 진동하며 따라다닌다)마지막을 마무리하는 방식이 마뜩치않다. 

문학은 그 장르적 특석상 호불호가 명쾌하게 갈리는 특성이 있다.개인의 취향 나름이지만 오늘의 거짓말은 정이현이라는 작가를 과식하게 만든 느낌을 준다.그건 다음 음식이 나올때 까지를 기대 한다기보다는 당분간은 그만 섭취하고 좀 쉬어도 될 것 같은,충분히 많이 먹었고 그 맛도 비슷비슷해 당분간 새로운 맛을 기대하지 않게 될 거라는 속내를 안타깝지만 솔직히 얘기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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